[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인간극장' 출연 후 행사 섭외도 늘고, 동네에선 스타가 됐어요."
트로트 가수 허지윤은 66세의 신인가수이자 무명가수다. 조그마한 무대에 오르기 위해 몇 시간을 달려 행사장을 찾곤 했다. 매니저 없이 짐가방을 손수 끌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때로는 딸들의 타박도 들었다. 그럼에도 노래 부르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단다. 황혼의 트로트 가수에게, 꿈많은 소녀의 표정이 깃들었다.
허지윤은 지난 2월 방송된 KBS1 교양프로그램 '인간극장'의 '66세 엄마는 도전 중' 편을 통해 소개된 트로트 가수다.
64세의 나이에 '내고향 완도'라는 데뷔곡을 갖고 활동 중인 허지윤의 사연이 전파를 탔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가 트로트 가수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그 삶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두 딸의 사회생활을 지원해주는 친정엄마이자 손자손녀들을 돌보는 할머니의 몫까지 해내야 한다. 귀향해 살고 있는 남편과 아들도 챙겨야 한다. 주변의 시선도 마냥 호의적이진 않다. 어르신들은 "고향 내려와서 살라"며 잔소리를 한다. 딸들의 서운함과 응원 사이에서 그는 트로트가수 허지윤으로 고군분투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꿈과 마주하는 허지윤의 도전, 방송 이후 많은 응원이 쏟아졌다.
허지윤은 "'인간극장' 출연 후 많이 알아본다. 팬들이 어마어마하게 생겼다"고 웃었다. 그야말로 '도봉구 스타'가 됐다. 허지윤은 "동네를 못 돌아다닐 정도다. 대충 다니질 못하겠다"라며 "얼마 전 가족들과 울진 여행을 다녀왔는데 대게집 아주머니와 손님이 알아보셨다"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행사 섭외가 쏟아지면서 노래 부를 무대가 늘었다는 것. 그는 "행사가 이전보다 5배는 늘어났다"라 "4월과 5월에 스케줄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고향 완도에서 열리는 '장보고 축제', 5월 8일 '송파 효잔치'에도 초대를 받았다. 허지윤은 "날씨 좋은 봄날, 여행한다는 마음으로 다니고 있다"고 했다. 행사를 위해 내려간 강진 면사무소 앞에는 '인간극장 호남을 빛낸 가수'라는 플랜카드가 걸려 그를 반겼다.
'인간극장'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지만, 사실 섭외를 받고 부담스러운 마음에 거절을 했었다고도 털어놨다. 허지윤의 큰 딸이 운영하는 뜨개교실의 제자가 방송작가였고, 우연찮게 '인간극장' 출연 섭외가 온 것.
"예전에 딸이 지나가는 말로 '엄마가 노래 좋아해서 노래교실에 다닌다'고 했어요. 그리고 몇 년 지나 '어머님 지금도 노래하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음반을 냈다고 했더니 출연 의사를 물어본 거죠. 사실 '인간극장'은 정말 유명한 프로그램이잖아요.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나가도 될까, 카메라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수줍기도 해서 거절했어요. 가족 회의 끝에 '한 번 해보자'고 했는데 하길 잘한 것 같아요. 가족들에게도 큰 추억이 됐어요."
'인간극장'에서도 소개가 됐지만, 허지윤은 노래를 좋아하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취미로 노래교실을 다녔던 그는 어느 순간 "내 노래를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정말 좋아했어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마다않고 노래했죠. 8년 동안 도봉구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 곳에서 어르신들에게 노래를 많이 불러줬어요. 노래교실을 졸업하고 강사 자격을 얻게 됐는데, 그 때 많은 선배들이 다 자기 노래를 갖고 있더라구요. 주변에서도 '목소리 좋을 때 음반을 내지'라고 했어요. 딸들에겐 말을 안 했지만, 음반이 갖고 싶었어요. 웨딩샵에서 꾸준히 일하며 저축을 하기 시작했죠."
허지윤은 동료의 소개로 작곡가 안지현을 알게 됐고, '내고향 완도'를 선물 받았다. 완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데뷔곡이 된 것. 남의 노래를 부르다가, 허지윤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부르는 노래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음반을 바라보는 허지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안지현 선생님이 '그 동안 월세를 살고 있다가 집을 마련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이야기 해줬어요. 지금도 집에서 한 번씩 CD를 꺼내봐요. 분명 내 음반인데 안 믿겨서 계속 쳐다보게 되요. 새로운 날들이 펼쳐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인간극장' 출연 이후 인지도가 높아지긴 했지만, 그는 지금도 여전히 신인 트로트 가수다. 여전히 '허지윤'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발로 뛰며 홍보하고, 지금도 홀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행사장을 찾는다. 다만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조금 늘어나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이 샘솟는다고.
그는 "예전에는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던 시선이 '가수 허지윤'으로 본다. 보컬 레슨도 열심히 받고 바빠졌다. '노래 더 잘하게 도와달라'고 할 정도로 욕심이 생겼다. 나를 더 돌아보게 되고 의욕도 생긴다"고 했다.
'1호 팬'이기도 한 가족들은 더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허지윤은 "남편이 더 좋아한다. 떡을 해서 동네 회관에 돌리고 식사대접도 했다. 어르신들은 '노래 불러보라'고 하고, '또 언제 노래하러 오냐'고 기다린다. 주변에서 '지원군이 많아서 부럽다'고 한다"고 뿌듯한 마음을 드러냈다.
66세 엄마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무대가 크고 작은 것과 상관없이, 항상 설레고 기대가 된다"고 했다. 서보고 싶은 '꿈의 무대'는 '전국노래자랑'과 '아침마당'이다. 그는 "언젠가 완도에서 열리는 '전국노래자랑'에서 '내고향 완도'를 부르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아주 오랫동안 노래하고 싶어요. 가족들이 곁에 있으니 더 힘이 나고, 지금으로선 30년은 더 거뜬하게 노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노래하면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제 꿈입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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