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몽유병, 층간소음 등 일상적인 소재를 잘 활용해 현실 공포감을 높였다. 여기에 배우 정유미와 이선균의 탄탄한 연기 내공이 더해져 극강의 몰입도를 자랑한다. 이미 칸의 선택을 받은 '봉준호 키드' 유재선 감독의 '잠'이 기대만큼의 유니크함으로 시선을 압도한다.
'잠'(감독 유재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 분)와 수진(정유미 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을 시작으로 제56회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제48회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이어 판타스틱 페스트까지 초청돼 기대를 모았다.
영화는 어느 날 옆에 잠든 남편 현수가 "누가 들어왔어"라는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한쪽 슬리퍼가 끼여 제대로 닫히지 않은 문이 바람에 계속해서 공포스러운 소리를 낸다. 오프닝부터 스릴러답게 숨 막히는 긴장감을 끌어올린 '잠'은 잠들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현수의 괴기한 행동을 연달아 보여준다.
갑자기 냉장고 문을 열고 생고기, 날달걀, 생선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지만 깨어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현수에 수진은 큰 두려움을 느낀다. 수진은 끔찍한 공포로 인해 잠들지 못하고, 현수는 병원 치료를 통해 수면 중 이상행동을 없애려 노력한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수진은 갓 태어난 딸까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극한의 긴장에 빠진다.
유재선 감독은 일상적인 행위인 잠을 소재에 수면 중 이상행동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더해 94분을 긴장감 있게 이끈다. 그간 스릴러 영화가 공포의 대상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주된 이야기가 다뤘다면, '잠'은 위협의 대상을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은 사람으로 설정해 끝까지 같이 있어야 한다는 차별점을 부여했다. 몽유병 환자만이 아니라 그를 지키는 배우자,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며 공포와 위협을 정면으로 돌파하고자 했다는 것. '둘이 함께하면 극복 못 할 문제가 없다'라는 문장이 계속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유재선 감독은 신경을 자극하는 소리, 불안한 심리를 드러내는 눈빛 클로즈업 등 탁월한 연출력으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묘미를 제대로 살려냈다. 이는 "10년간 본 스릴러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하다"라는 봉준호 감독의 극찬과 칸국제영화제의 선택을 받은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한다. 인물의 큰 변화를 장으로 나눠 3장으로 구성해 시간의 흐름을 유연하게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다.
다만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3장에선 중반까지 촘촘하게 쌓아놓은 서사와 심리와는 달리 현실감이 떨어지는 극한의 상황이 연달아 등장한다. 이는 관객들 사이 호불호를 예상케 한다. 특히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결말에선 의문의 해소보다는 찝찝함이 남고, 수진의 폭주 속 부족한 개연성과 디테일 역시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잠'을 통해 네 번째 연기 호흡을 맞춘 정유미와 이선균은 탄탄한 연기 내공을 뽐내며 '역시 믿고 보는 배우'임을 입증했다. 특히 만삭부터 출산 후 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유미의 생활 연기가 일품이다. 그는 남편에 대한 두려움과 수면 부족으로 점점 정신이 이상해져 가는 수진의 심리 상태를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이선균 역시 자신의 몽유병 증세에 당황하고, 변해가는 수진에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가족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남편의 다양한 감정선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 몰입도를 높였다.
9월 6일 개봉. 러닝타임 94분. 15세 이상 관람가.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