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평범한 사람들이 귀신을 어떻게 잡나. 귀신 잡는 영화 아니다." 장재현 감독이 '파묘'를 만들 때 중시했던 부분이 바로 현실감, 팩트였다. CG에 의존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 그렇기에 연기한 배우들은 물론이고 관객들도 극 속에 푹 빠져 스릴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장재현 감독이기에 그의 차기작이 벌써 기대될 수밖에 없다.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로 오컬트 장르의 한 획을 그은 장재현 감독의 신작으로, 최민식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 김고은은 원혼을 달래는 무당 화림, 유해진은 예를 갖추는 장의사 영근, 이도현은 경문을 외는 무당 봉길 역을 맡아 신들린 열연을 펼쳤다.
지난 22일 개봉 첫날 33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올해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더니 개봉 3일 만에 100만, 4일 만에 200만 관객을 넘고 5일째 박스오피스 1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5일 동안의 누적 스코어는 262만 명이다.
이 같은 흥행은 장재현 감독의 노력, 열정으로 만들어진 높은 완성도의 극과 배우들의 열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카메라 4대를 동원해 현실감을 제대로 살리며 강렬한 기세, 기운을 느끼게 한 대살굿을 비롯해 혼부르기, 도깨비놀이 등 극 속에 등장하는 굿 장면은 숨 쉴 새 없이 압도적인 몰입감을 끌어올린다. 리얼리티를 중시한 연출과 과감하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편집은 오컬트 장르의 재미를 극대화하며, 시작부터 끝까지 꿈틀거리는 듯한 베이스 소리는 긴장감과 스산한 분위기를 더한다.
"우리나라 땅엔 상처, 트라우마가 있다"라고 강조한 장재현 감독은 잘못된 과거를 꺼내 소멸시킨다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담고자 했다. 하지만 이를 명확하게 그리는 대신 '험한 것'으로 표현해 장르적인 재미를 더하고자 했다. 풍수지리학에 따라 우리나라는 나무, 일본은 칼에 비유하며, 부러지지 않고 꺾이지 않으며 뿌리만 있다면 다시 자라나는 우리의 민족성을 은유적으로 그려낸 것 역시 인상적이다. 판타지를 한스푼 담기는 했지만, 장재현 감독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그로테스크함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다음은 장재현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최민식 배우 캐스팅 과정은 어떻게 되나?
"장의사와 풍수사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없어지는 직업이다. 실제 만나보면 다 나이가 많고 꼬장꼬장하다. 우리나라 배우 중 생각나는 사람이 몇 명 없다. 카리스마와 꼬장꼬장함이 있는 동시에 최민식 선배의 겁에 질린 표정을 찍고 싶었다. 왜군이 삼백 척이 와도, 사람을 썰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분인데, 그런 겁에 질린 표정을 찍고 싶더라. 무속인은 실제로 30, 40대에 전성기인 사람이 많다. 유튜브에도 나오고 그것이 문화가 됐더라. 힙하게 표현이 됐는데 실제 무속인이 젊고 화려하다. 꼰대같은 장인들과 이들이 서로 의존하고 티격태격한다. 이쪽에선 꼰대라고 하고, 저쪽에선 발랑 까졌다고 하는 이들이 어린아이를 구하고 다음 세대에 땅의 의미를 찾아주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 무당이 경문을 외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무당이 사용하는 것인가? 실제와 어떻게 비슷한지 궁금하다.
"실제 존재하는 굿으로, 무속인 선생님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김고은, 이도현 배우가 굉장히 많은 굿 현장에 갔다. 둘 다 교회 다니는데(웃음). 퍼포먼스가 세 개 나오는데, 굿 신은 목적이 있어야 한다. 첫 번째 퍼포먼스인 대살굿은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먼저 변신을 해야 한다. 변신했나 안 했나 확인하려고 칼로 얼굴과 다리를 긋고 불에 손을 넣는다. 살을 날리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피를 먹는다. 피를 먹는 건 몸 안에 있는 것에게 비타민, 영양분을 채워주는 행동이다. 다 이유가 있는 퍼포먼스다. 두 번째 혼부르기는 돌아다니는 것을 영안실로 부르는 것이라 정확하게 해야 한다. 세 번째는 봉길과 무속인 세 명이 병실에서 하는 것인데 일명 도깨비놀이다. 숨어있는 혼을 속여서 정보를 알아낸다. 제주도 굿이다. 연극을 하면서 안심을 시킨 후 숨어있는 놈에게 물어보는 목적이 있다."
- 김고은 배우가 대살굿을 비롯해 무속인 역할을 정말 잘했는데, 경문을 욀 때 음을 잡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하더라.
"정말 프로다. 그냥 하는 것도 어렵다. 어려운 단어가 줄줄 나와야 한다. 그런데 선생님들의 특유의 뉘앙스, 허스키함까지 다 하려고 했다. 본인은 아쉬워했지만,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았다. 칼 하나 잡는 것도 태가 나야 하니까 엄청 노력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멋진 배우다. 세계적인 배우가 될 거고 전성기가 시작될 거다. 지금까지는 밑밥이다. 대한민국에 이런 배우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 유해진 배우가 연기한 영근 캐릭터는 장의사지만 교회를 다닌다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제가 처음 만난 장의사가 교회 장로님이다. 저도 이 영화 개봉했을 때 장로님께 혼날까 봐 걱정했는데, 기독교 관객들도 무시할 수 없으니 그런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웃음) 제 모습도 섞여 있다."
- 초현실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였나?
"대학 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저도 교회를 다니는데 사랑과 의리, 정을 말하는 곳은 저에게 교회밖에 없다. 사회생활 하면서 그런 거 어디서 얘기를 하겠나. 쓸모 있고 없고가 중요하지,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하면 미신이 되지만, 사람에게 꼭 필요하다고 본다. 신은 교회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은 새벽기도를 간 엄마의 마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반항심이 있다. 그래서 영화가 그렇게 어둡지 않고 희망이 있다고 본다. 보기와는 다르게 그런 캐릭터다. 물론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마니아는 실망할 수도 있다."
- 공포 요소를 배제했을 때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로테스크함은 있을 거다. 베를린에서 외국 기자를 만났는데 '당신 영화를 다 봤다. 당신은 호러 영화감독이 아니다. 오컬트, 신비주의자다'라고 하더라. 그러고 보니 제가 신비로움을 좋아하는 것 같다. '험한 것'도 신비롭게 찍고 싶었나 보다."
- 외국인들에게는 낯선 소재인데, 베를린영화제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왔나?
"그들은 일차원적으로 본다. 귀신이 나오면 '우와! 저건 뭐야?', '빨리 죽여'라고 소리치고 단순하게 접근한다. 강시, 미라, 뱀파이어 등 관에서 나오는 것이 많지 않나.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이 나왔어'라고 생각하면서 소리를 지르더라. 옆에서 보는데 콘서트장 같아서 같이 신이 나더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아마도 짬짜면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인 것 같다."
- 신비로움에 관심을 가지는데, 반면 촬영을 할 때는 진짜를 고집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장르가 현실 판타지다. 발을 땅에 딛고 있지 않으면 날아간다. CG에 의존하면 그렇게 된다. 그러면 마블로 가야 한다. 연기를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1순위다. 배우에게 엉망인 환경에서 연기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제가 아직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건데, 오케이를 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분위기다. 도깨비불에 돈을 제일 많이 썼다. 크레인 두 대를 썼다. 와이어로 잡아 크게 구를 만들고, 가스 불을 넣었다. 가스 불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색이 달라서, 구를 몇 개 만들어서 찍었다. 그런 후 CG로 리터치를 했다. 크레인이 건물만 하기 때문에 일반 길엔 못 간다. 길을 내야 해서 공사를 했다."
- 4인방이 '묘벤져스'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들이 다음에도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속편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저는 귀신을 잡으러 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풍기기 싫었고 피하고 싶었다. 그건 리얼함에 안 맞는다. '저거 없애자' 하지 않는다. 감당할 수 없으니 내가 시간을 끄는 동안 꺼내오라는 식이다. 관객들이 그렇게 보면 어쩔 수 없지만,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귀신을 잡겠나. 말이 안 된다. 그나마 풍수사가 가장 사명감이 있는 사람이라 퍼즐을 맞출 뿐 귀신을 잡는 영화가 아니다. 속편 같은 경우도 더 잘 만들어야 하는 건데 아직까지는 모르겠다."
- 이야기를 들어보면 팩트를 가장 중시하는 것 같다.
"무당이 귀신 잡는 걸 제가 본 적이 없는데 그걸 잡는 걸 찍는 것이 싫고, 평범한 사람이 어벤져스가 되는 것도 싫다. 본 적도 없고, 아니라고 생각하니 쓸 수가 없다."
- '검은 사제들', '사바하', '파묘'까지, '오컬트 장인'이라는 수식어에 대한 부담이 있나?
"영화를 만들면서 '이거 보다 못 만들었다'라고 하면 부담이 올 것 같다. 이번 영화를 찍으며 배우들, 스태프들에게 많이 배워서 부담보다는 빨리 다음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운 것은 최대의 퍼포먼스를 뽑는 방법, 소통하는 방법이다. 공부하면서 받은 아이디어가 많다. 다음 작품 하면 잘 만들 것 같다. 저의 실수가 많이 보인다. 다음번에는 저런 실수를 안 하겠다 하는 오답 노트가 있다. 그런데 너무 잘 만들면 또 힘들 것 같다. 그날이 영원히 안 왔으면 좋겠다."
- 다음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벌써 크다.
"어두운 거다. 저에게 공포영화 DNA는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밝지는 않을 거다. 아직은 '파묘'가 있기 때문에 다음 작품은 모르겠다. 이 사람과 헤어져야 다른 여자친구를 만난다. 디졸브는 비겁하지 않나.(웃음)"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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