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참 오랜만에 연상호의 이름값이 제대로 터졌다. 엄청난 충격과 새로움이 있는 건 아니지만, 대중적인 재미와 장르물 특유의 스릴을 느낄 수 있다. 묘하게 빠져드는 힘이 강하다. 그래서 참 반가운 '기생수: 더 그레이'다.
'기생수 : 더 그레이'(연출 연상호, 극본 연상호 류용재/이하 '기생수')는 인간을 숙주로 삼아 세력을 확장하려는 기생생물들이 등장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전담팀 '더 그레이'의 작전이 시작되고, 이 가운데 기생생물과 공생하게 된 인간 수인(전소니 분)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전소니, 구교환, 이정현, 권해효, 김인권 등이 출연한다.
기생생물이 인간의 뇌를 장악해 신체를 조종한다는 기발한 상상력과 철학적인 메시지로 30개 이상의 지역과 국가에서 누적 판매 2천 500만 부 이상을 기록한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를 원작으로 한다. 연상호 감독은 원작의 매력적인 설정을 살리면서도 '인간에게 침투하는 기생생물이 한국에 떨어졌다면?'이라는 상상력으로 차별화된 색을 입히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기생생물이 손에 깃든다는 설정으로 직접 상호작용을 하는 원작의 주인공 신이치, 미기와 달리 하나의 몸을 공유한 채 일정 시간 의식을 나눠 갖는 수인과 하이디라는 형태로 차별화된 캐릭터를 고안해낸 것.
총 6부작 중 3회까지 언론에 선공개된 '기생수'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기생생물이 클럽에서 사람의 뇌를 빼앗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조직을 이뤄 세력을 확장하며 본격적으로 인간을 위협한다. 이들을 막기 위한 기생생물 전담반 '더 그레이'가 결성된다. 마트에서 일하던 수인은 난데없이 습격을 당해 죽기 직전 상황에 이른다. 그런데 수인은 상처만 남아있을 뿐, 아무렇지 않게 살아난다. 알고 보니 수인을 숙주로 삼으려던 기생생물이 수인의 몸을 회복시키는데 힘을 쓰면서 정작 뇌를 다 빼앗지 못했던 것. 이에 인간 수인과 기생생물 하이디는 기묘한 공생하게 된다. 그리고 수인은 동생을 찾기 위해 나선 강우(구교환 분)와 함께 점차 위험한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1회는 기생생물과 캐릭터의 설명이 주를 이룬다. 이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또 기생생물이 동족들과 구사하는 말투와 기생생물의 비주얼이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초반만 잘 버티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적응해 극 속에 빠져든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기생수'의 세계관이 어렵지 않고, 속도감은 빠르다. 사람이 기생생물로 변하는 순간의 스릴, 인간을 공격할 때의 파괴력, 동족과 맞서 능력을 펼치는 하이디의 강력한 존재감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사라진 동생을 찾던 과정에서 기생수 조직의 비밀을 알게 된 강우가 조직에 쫓기면서 펼치는 액션신도 흡입력이 있다.
전소니는 부친에 대한 상처와 외로움을 안은 수인의 감정선을 묵직하게 표현하는 동시에 기묘한 분위기의 하이디를 탁월하게 소화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인간과 기생생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변종으로서 내적 갈등을 겪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반도', '괴이'에 이어 연상호 감독과 또 손을 잡은 구교환은 사건을 파헤치는 강단과 액션에 특유의 위트까지 더해 계속 보고 싶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완성했다. 구교환의 무한매력이 폭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담팀 준경 역 이정현의 연기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남편을 빼앗아간 기생 생물에게 강한 적개심을 가진 준경은 기생생물들을 쫓던 중, 수인을 발견하고 집요하게 그를 쫓는다. 기생생물 전후로 캐릭터 변화가 큰 이정현은 평소보다 발성과 음정을 낮춰 연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장된 말투와 표정은 극에 녹아들지 못하고 튄다는 느낌이 든다. 반전을 가진 김인권의 존재감도 다소 아쉽다.
연상호는 신작마다 배우보다 훨씬 더 많이 이름이 거론되는 작가이자 감독이다. '부산행', '반도', '지옥' 등 기발한 소재와 상상력으로 장르물에서 남다른 성과를 얻었던 그이기 때문. 물론 최근작에선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물로 아쉽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지만, 여전히 연상호의 신작이라고 하면 기대 반, 의심 반의 눈으로 관심을 보내게 된다. '기생수: 더 그레이'도 마찬가지. 원작이 가진 공존이라는 주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인간과 다른 생물과의 공존, 혹은 변종들과의 공존, 인간이 자신과 다른 존재와 공존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라는 '기생수: 더 그레이'가 그간의 부진을 털어내고 연상호의 대표작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4월 5일 공개. 총 6부작. 청소년 관람불가.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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