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강에서 만난 이집트의 이만 샤뱐은 키가 186cm였다. 남현희보다 무려 33cm가 컸다. 하지만 남현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키가 큰 것이 펜싱에 불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남현희가 온몸으로 보여줬다. 남현희의 스피드와 발놀림을 당해내지 못했다. 남현희는 15-6으로 간단하게 거구의 상대를 물리치고 16강으로 향했다.
16강에서 만난 헝가리의 바르넬라 바르가. 그녀의 키는 180cm. 바르가 역시 자신보다 27cm가 작은 남현희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4-15로 완패했다.
8강에서 만난 상대는 일본의 수가와라 지에코. 그녀는 162cm로 그나마 가장 남현희와 키가 엇비슷(?)했다. 남현희는 일본펜싱의 간판마저 15-10으로 누르며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은 이탈리아 천국이었다. 남현희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선수들은 모두 이탈리아 선수였다. 그것도 지구상에 딱 세 명밖에 안 되는, 남현희보다 세계랭킹이 모두 앞선 선수들이었다. 4강에 오른 선수들은 세계랭킹 4위 남현희보다 모두 높은 랭킹을 가진 선수였다. 세계랭킹 1위 발렌티나 베잘리, 세계랭킹 2위 죠반니 트릴리니, 세계랭킹 3위 마르게리타 그란바시가 그들이다.
준결승에서 만난 트릴리니. 그녀는 39세의 노장. 164cm로 역시 남현희보다 컸다. 그녀는 이탈리아 펜싱의 산 증인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을 포함해 올림픽에서만 메달을 7개 따낸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노련함으로 무장한 트릴리니에게 남현희는 초반 고전했다. 하지만 침착함을 찾은 남현희는 세월을 비켜가지 못한 노장을 추억 속 저편으로 보내버렸다. 15-10으로 승리. 남현희는 금빛 노래를 부르기 위해 다음 단계로 올라섰다. 마지막 단계로 전진했다.
마지막 관문에서 만난 선수는 세계최강 베잘리. 2000년 시드니올림픽, 2004년 아테네올림픽 플뢰레 개인전 우승자로, 대회 3연패를 노리고 있었다. 또한 세계선수권 9회 우승이라는 업적도 가지고 있다. 남현희와의 역대전적도 3전 3승으로 절대우세였다. 164cm인 베잘리는 남현희보다 11cm나 컸다. 모든 면을 따져봐도 남현희는 불리했다. 그래도 남현희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동안 이겨보지 못한 세계최강을 만나 초반 3점을 내리 내주며 조금은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2라운드에 들어서 남현희는 연속 3점을 기록하며 따라붙었고, 마지막 3라운드 41초를 남기고는 5-4로 역전에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하늘은 남현희에게 금메달을 허락하지 않았다. 남현희는 종료 29초를 남기고 5-5 동점을 허용했고, 종료 4초전 통한의 역전을 허용했다. 결국 5-6으로 너무나 아쉬운 패배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남현희가 따낸 은메달. 자랑스러운 은메달이다. 눈물 나도록 자랑스럽다. 남현희가 따낸 은메달은 2004년 노메달에 그친 한국 펜싱의 자존심을 끌어올린 은메달이고, 한국 여자 펜싱 최초로 따낸 은메달이다.
남현희가 상대한 선수들 중 남현희보다 작은 선수는 없었다. 누구를 만나든지 남현희는 그들보다 머리하나는 차이났고, 팔은 짧았다. 그래서 남현희는 그들보다 두 배로 뛰었다. 키가 작은 만큼, 팔이 짧은 만큼 더욱 열심히 뛰었다. 남현희의 발걸음은 상대를 압도했다.
남현희가 따낸 은메달이 금메달 보다 더욱 값진 이유다. 남현희의 투지와 노력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불리한 신체를 극복하고자 피땀 흘려 연습한 결과다. 전 국민을 감동시키는데 남현희의 은빛 메달이면 충분했다. 남현희가 만들어낸 은빛이 금빛보다 더욱 빛났다.
또 남현희는 약속을 지켰다. 지난달 9일 만난 남현희는 "발렌티나 베잘리는 세계최강이다. 선수로 봤을 때 너무나 잘한다. 이번 올림픽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다.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칠 것"이라고 약속했다. 남현희는 국민들과 한 약속을 100% 지켰다. 정말 베잘리와 후회 없는 경기를 펼쳤다.
153cm의 '작은 거인' 남현희. 그녀가 눈물 나도록 자랑스럽다.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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