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슬럼프에 빠진 팀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별로 없다. 연패가 10경기 가까이 이어지면 모두가 안절부절하기 마련이다. 팬과 프런트가 먼저 흔들리고 선수단도 동요하기 일쑤다. 이럴 때 만지작거리는 카드가 '배수의 진'이다. 정도를 벗어나더라도 어떻게든 연패를 끊고 분위기 반전을 꾀해야 하기 때문이다.
LG 트윈스는 17일 마약과도 같은 '극약처방'을 썼다. 에이스 벤자민 주키치를 6회부터 중간계투로 구원 투입하는 초강수를 뒀다. 김기태 LG 감독의 무리수로 보이지만 사실 잘 계산된 조치였다. 올스타 휴식기까지 2경기만 남겨두고 있다. 더구나 18일부터 이틀간 전국적인 폭우가 예보되고 있다. 이날이 전반기 마지막 경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뿐만 아니라 주키치는 13일 잠실 넥센 히어로즈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2.2이닝 투구에 그쳐 사흘만 쉬었어도 체력적 부담은 전혀 없다. 야구를 조금만 관심있게 지켜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던 포석이다.
김 감독의 선택은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선발 김광삼을 내세운 LG는 5회까지 1점차 리드를 유지했고, 6회부터 주키치와 셋업맨 유원상, 마무리 봉중근을 줄줄이 내세워 3-1로 승리했다. 지긋지긋한 7연패 늪에서 마침내 탈출했다.
8연패 뒤 3연승한 SK. 6연패 뒤 2연승 그리고 7연패한 LG. 1승에 대한 절실함은 LG가 더했다. 팀내 가장 믿을 만한 선발투수 2명을 잇달아 내세운 '변칙'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이유였다. 그리고 결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달콤한 연패 탈출이었다.
4회 SK가 선취점을 얻을 때만 해도 LG 덕아웃엔 또 암운이 드리웠다. 1사 뒤 최정이 좌익수 옆 2루타로 찬스를 만들자 이호준은 좌중간을 완전히 가르는 대형 2루타로 최정을 불러들였다.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LG는 4회말 곧바로 경기를 뒤집었다. 그리고 이 역전은 경기의 흐름을 뒤바꾼 분수령이었다. 선두 이병규가 좌전안타로 분위기를 띄우자 박용택은 좌익수와 파울라인 사이에 떨어지는 2루타로 2, 3루 기회를 이어갔다. 후속 이진영이 초구에 2루수 뜬공으로 물러났지만 6번타자 김태완은 전진 수비한 SK 좌익수 김재현의 키를 넘어가는 2루타를 때려냈다. 이 때 주자 2명이 홈을 밟아 2-1 역전.
고대하던 리드를 잡은 LG는 김광삼이 5이닝까지 임무를 완수하자 6회부터 지체 없이 주키치를 투입했다. 지난해 7월7일 대전 한화전서 2이닝 무실점하며 세이브를 기록한 게 유일한 한국 무대 구원 등판 기록인 주키치는 선수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특유의 날카로운 커터를 앞세워 승리의 징검다리를 단단하게 놓았다. 6회 3타자를 가볍게 처리한 그는 7회 잠시 위기를 맞았다. 선두 박정권을 볼넷으로 내보낸 뒤 희생번트로 1사 2루. 그러나 주키치는 긴박한 순간 조인성과 대타 안치용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이닝을 끝냈다. 안타 하나면 리드가 날아가는 상황에서 과감한 몸쪽 승부로 상대 타선의 허를 찌른 결과다. 이날 경기의 게임 포인트였다.
아슬아슬한 1점차 리드를 유지한 LG는 8회초 유원상을 내세운 뒤 8회말 김태군의 번트 타점으로 쐐기점을 뽑았다. 2점차 리드를 안은 9회에는 마무리 봉중근을 투입, 오랜 만에 값진 승리를 확정했다. 최근 7연패와 잠실홈구장 12연패의 늪에서 마침내 벗어난 것이다.
5이닝 동안 5피안타 2탈삼진 1실점으로 안정감 있는 투구를 펼친 김광삼이 승리의 밑바탕을 깔았다. 김광삼은 시즌 5승째(5패)를 기록했다.
SK는 선발 고든이 6이닝 4피안타 3볼넷 2실점으로 제 몫을 해줬지만 타선이 고비에서 터지지 않아 3연승 행진이 중단됐다. 이날 1군 명단에 합류한 셋업맨 박희수는 7회 등판, 1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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