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준기자] 삼성화재 베테랑 석진욱은 화려한 조명을 받는 선수는 아니다. 주 공격수가 아닌 보조 레프트 역할을 주로 맡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석진욱은 한양대 재학시절부터 '배구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브 리시브와 2단 연결 그리고 수비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격력까지 처지는 게 아니다. 공수를 겸비한 그는 리베로 여오현과 함께 삼성화재가 자랑하는 촘촘한 수비 조직력의 핵심멤버다.
그런 석진욱이 오랜만에 득점에 적극 가담했다. 그는 17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 4라운드 첫 경기에서 7득점 공격성공률 66.67%로 알토란같은 활약을 했다. 석진욱은 "내가 공격을 하면 안된다"고 웃었다. 팀에 레오(쿠바)와 박철우라는 좌우쌍포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득점을 많이 내는 경기는 공격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삼성화재는 24점을 올린 레오 외에 박철우가 9점 석진욱과 고희진이 각각 7점을 보태는 고른 활약으로 3-0 완승을 따냈다. 물론 석진욱과 고희진의 공격 점유율은 레오나 박철우와 견줘 낮았다. 볼이 많이 오지 않았지만 토스가 자신에게 왔을 때 그 기회를 잘 살린 셈이다.
석진욱은 "세터인 유광우가 내게는 평소에 토스를 잘 안보낸다"고 했다. 물론 원망의 뜻은 아니다. 삼성화재에서 석진욱이 맡고 있는 부분은 공격 전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대한항공전만큼은 변화를 줬다. 유광우는 상대 블로커의 위치를 파악한 뒤 석진욱이 오픈 공격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주저없이 토스를 보냈다.
석진욱은 "모든 공격이 성공할 순 없다"며 "내가 시도한 공격이 상대에게 막히거나 아웃이 되면 심리적으로 팀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유)광우가 그러더라. 그래서 토스를 내게 안준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석진욱은 팀 내 최고참이다. 절친한 친구사이로 함께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었던 장병철(은퇴)과 최태웅(현대캐피탈)은 이제 더 이상 같은 팀 소속이 아니다. 입단 초기 어려워만 보였던 선배들인 김상우(현 남자 청소년대표팀 감독), 김세진(KBS 배구해설위원), 신진식(현 홍익대 감독) 등도 선수생활을 그만둔 지 꽤 됐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
게다가 무릎과 어깨를 비롯해 크고 작은 부상이 끊임없이 석진욱을 괴롭혔다. 2010-11시즌은 무릎 인대를 다쳐 꼬박 재활에만 매달린 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코트에서 땀을 흘리며 몸을 던지고 있다.
석진욱은 "(여)오현이와 고희진 등 바로 아래 연배인 후배들과 자주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언제까지 함께 같이 뛸 수 있을지에 대해서다. 언젠가는 나도 유니폼을 벗을 날이 오기 마련이다"며 "그러나 그 때가 오기 전까지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3라운드에서 고희진, 여오현 등은 팀 성적이 주춤하자 삭발 투혼을 보였다. 석진욱도 여기에 동참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고희진이 말렸고 석진욱은 그나마 긴 머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만약 짧게 머리를 잘랐다면 큰일이 날 뻔했다"며 "흰머리도 많은데다 머리모양도 예쁜 편이 아니다. 팬들이 보기에도 불편했을 것이다. (고)희진이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고 껄껄 웃었다.
조이뉴스24 /대전=류한준기자 hantae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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