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승부는 냉정했지만 그라운드 안팎은 따뜻한 분위기였다.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 2013' 여자축구 한국-북한의 1차전이 열린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남북 대결'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긴장감이 묻어 나왔다.
전날 열린 일본-중국 여자부, 한국-호주의 남자부 경기 때와 달리 경호도 삼엄해졌다. 경비업무를 담당하는 업체에서는 경비 인력을 두 배로 늘려 그라운드 안팎을 감시하며 혹시나 모를 위험 상황이나 안전사고에 대비했다.
예상 밖의 일도 벌어졌다. 이날 경기장에는 박종길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직접 경기장을 찾아 관심을 모았다. 남북 경색 국면을 스포츠 교류로 풀어보려는 일종의 메시지로 볼 수 있는 장관의 행보였다.
류 장관 외에도 이홍구 전 국무총리, 한선교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축구계 주요 인사 등이 경기를 관전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류 장관이 온다는 통보는 없었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인 것 같다"라고 전했다.
경기장 분위기는 딱딱하지 않았다. 북한 선수단이 몸을 풀러 그라운드로 나오자 관중석에서 박수가 나왔다. 선수들도 미소를 보이며 화답하는 등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북한 대표팀 오길남 단장은 대한축구협회 김동대 대외협력 부회장과 그라운드에서 수십여 분 이야기를 나누는 등 다정한 모습을 보여줬다. 문장홍 부단장도 선수들을 격려한 뒤 본부석에 앉아 양측 선수들을 응원했다.
관중석에서도 양팀을 함께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남쪽 관중석 하단에는 30여명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응원단이 자리잡아 조용히 관전하며 응원을 했다.
본부석 건너편 2층 관중석에는 6·15공동선언실천위원회 남측 인사들이 모여 응원을 펼쳤다. 이들은 하늘색 종이를 들고 한반도 모양을 만든 뒤 "조국 통일", "우리는 하나다" 등의 응원 구호를 외쳤다.이들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조국은 하나다'라는 격려 현수막을 펼치다 정치적 문구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주최측과 경찰의 제지로 응원에만 열중했다.
경기가 시작될 때도 마찬가지. 류 장관과 오 단장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함께 양 팀 선수들을 격려했다. 다만, 국민의례에서 한국의 애국가가 흘러 나오자 오 단장은 애써 태극기를 외면하며 인공기를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한국이 선제골을 넣을 때나 북한이 동점골과 역전골을 넣을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환호가 나왔다. 경기 종료 뒤에는 한국의 윤덕여 감독이 북한 벤치로 이동해 김광민 감독과 어깨동무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두 감독은 지난 1990년 열린 통일축구에서 선수로 함께 뛴 뒤 23년 만에 만났다.
이념과 정치적인 경계는 있었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그 어떤 경계도 없이 남북 선수들의 진지한 겨루기로 땀과 열기가 넘쳤다.
조이뉴스24 상암=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사진 조성우기자 xconfind@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