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의 인기몰이는 여러 분석을 가능케 하는 현상이다. 최근 부진을 면치 못했던 디즈니가 회심의 흥행작을 내놓았다는 점, OST의 인기가 영화의 인기에 불을 붙였다는 점도 시선을 모은다. 뮤지컬 실사영화 '레미제라블'의 총 관객수를 넘어서면서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흥행 가능성도 확실히 열었다.
인기 요인을 '겨울왕국'의 서사에서 찾는 것 역시 유의미하다. 인기 캐릭터 엘사의 결단과 성장은 관객들에게 특히 인상적인 장면들로 남았다. 엘사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며 부른 '렛 잇 고(Let It Go)'는 가장 뜨거운 인기 넘버다.
영화는 얼어버린 아렌델 왕국의 저주를 풀 유일한 힘을 가진 자매 엘사와 안나의 모험을 그린다. 손에 닿는 것은 모두 얼려버리는 마법의 능력을 지닌 엘사는 어린 시절 실수로 안나를 다치게 하고, 세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이유로 아렌델 성 안에 격리된다.
왕국은 엘사의 성년을 맞아 성문을 개방하고 여왕 즉위식을 연다. 이 자리에서 분노의 마법을 부리고 마는 엘사는 결국 왕국을 얼려 여름을 사라지게 만든 채 길을 떠난다. 어린 시절 외로이 방 안을 지켜야 했던 그는 성인이 되고야 비로소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떠날 결심을 한다.
떠나기 전과 후 엘사의 고독은 외피적으로 같지만 그 동기는 전혀 다르다. 강요된 고독과 선택된 고독의 차이다. 아렌델 성에서 고립은 부모의 권력, 동생을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 자기 검열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스스로 세운 외딴 성을 홀로 지키는 엘사는 아렌델 왕국에서 짊어져야 했던 모든 조건들로부터 자유롭다.
엘사가 감추길 강요받은 것은 마법 이전에 그의 감정이다. 즉위식에서 분노와 함께 얼음의 마법을 부렸듯 엘사의 감정은 그 자체로 세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마. 눈에 띄어서도 안 돼. 늘 그랬던 것처럼 착한 소녀가 되렴. 감추고, 의식하지 마. 누구도 알아채선 안 돼.(Don't let them in, don't let them see. Be the good girl you always have to be. Conceal, don't feel, don't let them know.)'라는 '렛 잇 고'의 가사 그대로다.
엘사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만 보기에,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너무나 현실적이며 일상적이다. 우리의 삶을 아렌델 성에 갇힌 엘사의 모습으로 치환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선택의 권한 없이 가정·학교·군대·직장 등 무수한 집단에서 규율을 학습해온 사람들에게 본래의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야 했던 엘사의 과거는 낯설지 않다. 착한 아이, 올바른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훈육을 내면화했던 엘사는 학습된 강박을 깨고 그만의 길을 찾아 나섰다. 그렇지 못한, 혹은 그럴 수 없는 수많은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긴 결정이다.
자매애를 내세운 신선한 엔딩에도 여러 코드가 숨어 있다. 이성애적 연애 관념으로 '사랑'의 카테고리를 구성하는 관객에게 '겨울왕국'의 결말은 반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자매 간 사랑의 복원, 여성 간 연대가 위기를 극복할 열쇠였다는 점에서 디즈니는 기존의 독립적 여성상에서 관계의 지평으로 시야를 넓히는 데 성공했다.
영화는 제71회 골든글로브와 제41회 애니상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애니메이션 최다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수상 가능성을 높였다.
크리스 벅·제니퍼 리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자막 상영판에선 크리스틴 벨이 안나의 목소리를, 이디나 멘젤이 엘사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한국 더빙판을 통해서는 성우 박지윤이 연기한 안나, 소연이 연기한 엘사를 만날 수 있다. 영화는 지난 14일 누적 관객수 830만 명(영화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이상을 모으며 흥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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