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아무래도 보는 시야가 다르다. 야수 출신들은 상황을 두루 살펴야 한다. 포수는 특히 경기의 거의 모든 분야에 관여한다. 디테일에 강할 수밖에 없다." 조 매든 탬파베이 레이스 감독의 설명이다. 지난 2007년 어느날 트로피카나필드 홈팀 감독실. "메이저리그에 왜 투수출신 감독이 거의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도자 경력 30년이 넘는 그는 이렇게 답했다. 더블A도 밟아보지 못한 채 은퇴한 무명 선수 출신인 그의 현역 시절 포지션은 포수였다.
#"야구는 감독이 아닌 선수가 한다"는 말은 사실상 정설로 통한다.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도 전력이 약한 팀을 단기간에 강팀으로 바꾸기 쉽지 않다. 오클랜드 '머니볼' 시대의 지도자로 각광을 받았지만 동부의 '큰 손' 뉴욕 메츠로 옮겨서는 망신만 당한 아트 하우, 뉴욕 양키스에선 전설의 명장으로 통했지만 LA 다저스에선 빛이 바랜 조 토리 등 많은 사례에서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미키 맨틀과 요기 베라를 앞세워 1950년대 '양키 왕조'를 이뤘지만 1962년 메츠의 창단 감독이 돼서는 그간 쌓은 업적을 모두 갉아먹은 케이시 스텡걸은 또 어떤가.
#반대로 지도자로서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 강팀을 맡을 경우 성적이 급락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잠깐 동안의 플로리다 말린스 감독을 거쳐 2008년 '거함' 양키스의 수장이 된 조 지라디는 7년째 대과 없이 감독직을 수행 중이다. 1999년부터 3년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코치를 거친 게 지도자 경력의 전부인 하라 다쓰노리는 2002∼2003년 잠깐 감독 경험을 쌓은 뒤 2006년부터 현재까지 일본 최고 인기구단 요미우리 감독으로 장수하고 있다. 지라디와 하라 모두 젊은 나이에 개성 강한 스타들을 이끌면서도 이렇다 할 잡음 없이 꾸준한 성과를 냈다.
#열거한 감독들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야수 출신이라는 점이다. 현역 메이저리그 감독들 가운데 투수 출신은 손에 꼽을 정도다. 버드 블랙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감독이 거의 유일한 예외다. 우리 귀에 익은 토니 라루사, 바비 칵스, 토리 같은 명장들은 예외 없이 내야수 또는 포수 출신이다. 감독으로 메이저리그 통산 2천승 이상 거둔 지도자 가운데 투수 출신은 전무하다. 범위를 1천승 이상으로 넓혀도 토미 라소다 정도를 제외하면 투수 출신 감독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역 빅리그 감독 최다승 순위 1∼5위인 브루스 보치(샌프란시스코, 포수), 마이크 소시아(LA 에인절스, 포수), 벅 쇼월터(볼티모어, 1루수) 테리 프랑코나(클리블랜드, 외야수), 론 가든하이어(미네소타, 내야수)도 예외 없이 현역 시절 포지션은 야수였다.
#야수출신 감독들의 강세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적어도 21세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난해까지 역대 감독 최다승 순위 7위 가운데 야수 출신은 4명(김응용, 김재박, 강병철, 이광환)이다. 나머지 3명인 김성근, 김인식, 김영덕 감독의 경우 투수 출신이긴 하지만 이들의 현역 선수 시절은 야구의 분업화가 이루어지기 전이어서 사실상 종합 야구인으로 봐야 한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프로 선수로 현역 시절을 보낸 신진 감독들이 여럿 배출됐다. 이 가운데 지도자로 뚜렷한 성과를 거둔 류중일(삼성, 내야수), 김경문(NC, 포수), 조범현(kt, 포수) 감독이 모두 야수 출신이다. LG에선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현대 시절 '다이너스티'를 일군 김재박 감독도 현역 시절 명 유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말 많고 탈 많은 LG 트윈스가 새 감독으로 양상문 전 롯데 감독을 영입했다. 1루수 출신인 김기태 전 감독 대신 투수 이론의 대가인 양 감독에게 덕아웃 지휘권을 맡긴 이유는 분명하다. LG의 젊은 선수들을 성장시킬 적임자로 꼽히기 때문이다. 부산고-고려대 시절 기교파 좌완투수로 이름을 날린 양 감독은 야구계의 대표적인 공부하는 지도자다. 성품이 온화하고 합리적이며 팀을 장기적인 강팀으로 만드는 데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양 감독의 등장으로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투수 출신은 3명으로 늘어났다. 양 감독 외에 김시진(롯데), 선동열(KIA) 감독도 현역 시절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명투수들이었다. 투수 출신 감독들의 입지가 갈수록 위축되는 현실에서 양 감독이 한국 프로야구판에 새로운 흐름을 주도할지 주목된다.
조이뉴스24 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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