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한국 영화계에 중국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모두가 예상한 '광풍'이지만 그 속도가 상상 이상이다. 한중 합작 프로젝트로 기획 중인 작품들이 하나 둘 베일을 벗고, 양국 영화계의 지속적인 협력을 도모하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의 방한 당시에는 양국의 영화 공동제작협정이 체결됐다. 한중합작 영화가 중국 영화로 분류되고 외화 쿼터에 따른 불이익이 사라짐에 따라 합작에 대한 중국 투자자들의 관심도 그만큼 뜨거워졌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서 입증된 중국의 바람
10월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중국 자본이 불어닥친 한국 영화시장의 현주소였다. '중국의 유튜브'로 불리는 현지 동영상 사이트 기업 유쿠투더우(Youku Todou)의 CEO 빅터 쿠 회장, 유쿠투더우가 최근 발족한 영화 사업부이자 중국 최초의 온·오프라인 제작사 허이필름의 알렌 주 대표는 영화제 기간 중 부산국제영화제와 아시아의 신인감독들을 발굴 및 육성하는 '아시아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빅터 쿠 회장과 알렌 주 대표는 직접 한국 기자들을 만나 한중합작 프로젝트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간 한국의 방송사, 유수의 매니지먼트사와 협력 관계를 이어 왔다는 빅터 쿠 대표는 한중합작 프로젝트의 미래를 내다보며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뿌리가 같다는 것이 한중합작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한국의 영화 제작 수준은 아시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중 영화 공동제작협정 이후 한국 영화가 중국 시장에서 더 큰 발전의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알렸다.
알렌 주 대표는 김태균 감독이 연출하고 한국 배우 지진희가 주연을 맡은 한중합작영화 '나쁜 여자의 혼인연맹 해체'(한국 개봉 예정 제목은 '두 도시 이야기')에 대해 설명하며 "11월에 중국 영화관에서 개봉, 상영할 예정이다. PD와 제작자, 각본가가 중국인이라는 것 외에 모든 것을 한국인들이 맡았다"고 밝혔다.
온라인 플랫폼을 강점으로 삼는 유쿠투더우는 양질의 한중합작 콘텐츠를 통해 큰 수익이 발생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알렌 주 대표는 "우리 그룹에서 가장 성장이 빠른 분야가 유료 프리미엄 프로젝트"라며 "앞으로 5년 동안 이 분야 시장이 50억 위안(한화 약 8천568억 원)의 규모에 달할 것이라 본다"고 예측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조이뉴스24와 만나 한국 영화계에 대한 중국 시장의 뜨거운 관심에 대해 "내년 쯤 광풍이 올 것이라 내다봤지만 올해 앞서 시작된 것 같다"며 "유쿠투더우와 지난 1년 간 꾸준히 이야기를 나눈 결과 한국 영화가 가진 파워를 느낄 수 있었다"고 알렸다.
같은 시기 열린 아시아필름마켓에서도 한국 영화계에 쏠리기 시작한 중국 투자자들의 관심을 목도했다. 한류 스타가 출연한 영화, 출연 예정인 영화들에 중국인 바이어들의 관심이 쏠렸다. 향후 합작 프로젝트에 대한 문의 역시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 당시 조이뉴스24가 만난 부스 관계자들의 일관된 설명이다.
영화제 측은 "올해 아시아필름마켓은 중국 기업들의 적극 참여와 함께 그 성과도 두드러졌다"며 "국내 영화 콘텐츠를 찾기 위해 마켓을 방문한 중국 최대 온라인 플랫폼 아이치이(iQIYI)는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라인업 40여 편과 화인컷 라인업 50여 편의 온라인 독점 판권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합작 영화 러시,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지난 2013년 한중합작 영화 '이별계약'(감독 오기환)의 성공으로 중국 개봉 이틀 만에 제작비 3000만 위안(한화 약 54억원)을 회수했던 CJ엔터테인먼트는 새로운 한중합작 영화들을 선보인다. 중국판 '수상한 그녀'로 알려진 '20세여 다시 한 번', 장윤현 감독이 연출하고 중국 배우 황리싱, 따이리런이 출연한 스릴러 영화 '평안도'도 개봉 예정이다.
한국과 중국, 말레이시아가 함께 제작에 참여하는 영화들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공동 제작 MOU를 맺으며 제작에 박차를 가했다. 한국 영화사 필름라인과 말레이시아의 프로디지, 중국의 피닉스 레전드 필름이 '선생님 일기'와 '오빠 김선남'을 함께 선보인다. 중국 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의 한국 영화화를 성사시킨 영화사 두타연의 안동규 대표 역시 이번 합작 작업에 참여한다.
'선생님 일기'는 한국의 김태식 감독이 연출을 맡는 영화다. 올해 상반기 태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던 영화를 중국 윈난 지역을 배경으로 리메이크한다.
'오빠 김선남'은 한국의 인기 아이돌을 만나기 위해 각기 모여든 여성들, 그리고 이들을 찾으러 나선 인물들의 이야기다. 흥행작 연출 경험은 물론 한중합작 영화 작업의 노하우도 있는 한국의 감독이 연출자로 내정됐다. 지난 2013년 금마장영화제 프로모션작이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 프로젝트작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70%, 중국 베이징과 타이완, 홍콩에서 30% 분량이 촬영될 예정이며 현재 캐스팅이 진행 중이다.
활발해지고 있는 한중합작의 움직임에 대해 한국 영화계의 제작자들 역시 촉각을 세우고 있다. 영화사집의 이유진 대표는 조이뉴스24와 만나 "한국 영화든 합작 영화든, 콘텐츠에 보편성을 담아 폭발력을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합작을 통해 양국의 회사 모두가 잘 될 수 있는 알찬 콘텐츠가 있다면 작업의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알렸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에서 열린 천만영화제작자 포럼에서도 비슷한 화두가 던져졌다. '괴물' '26년' 등을 제작한 영화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중국 영화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며 합작에 참여하려는 움직임도 많이 보인다"며 "앞으로 중국 영화 시장은 할리우드와 비슷한 규모까지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 자국 내 인력으로는 그 규모를 충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할리우드가 유럽 유명 감독에게 연출을 맡기고 호주 배우들을 출연시키듯 중국도 아시아 영화인들을 많이 필요로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중국에서 '괴물'의 리메이크 제안을 받아 논의 중"이라고도 알렸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우리가 중국 시장에 고용되는 것보다는 우리의 프로젝트를 엮어 패키징으로 접근할 때 보다 핫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