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배우 송강호가 영화 '밀정'의 촬영 중 상해 임시정부청사에서 가슴에 무거운 부담을 안고 돌아왔던 기억을 전했다. 일제강점기 독립 투사들, 그리고 그들과 일본 경찰 조직의 사이에서 매 순간 생애의 결단을 내려야 했던 주인공으로 분한 송강호는 청사를 돌아보며 남다른 감회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2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 제작 영화사 그림㈜,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의 개봉을 앞둔 배우 송강호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밀정'은 1920년대 말, 일제의 주요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숨막히는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 송강호는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 역을 맡았다.
영화의 완성본을 관람한 소감을 묻자 송강호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그 전에 없던 것은 아니었다"며 "촬영할 때도 영화를 볼 때도, 어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보다는 어떤 시선을 가지고 그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떠올렸다. 그런 점에서 김지운이라는 사람의 차별화된 시선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이 '밀정'의 매력, 독창성이 아닌가 싶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는 혼란과 혼돈의 시대가 아닐까 싶어요. 좌절의 시대이기도 했죠. 물론 36년이라는 삶 자체가 어찌 보면 길기도 하고, 어찌 보면 짧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개인의 삶에선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긴 좌절의 시간이에요. 그런 시대를 연기하고 작품을 한다는 것 때문에, 다른 작품과 비교해 마음의 무게감이 달랐어요. 가볍지만은 않았죠."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특성은 그로 하여금 '밀정'이라는 영화에 욕심을 품게 만든 요소이기도 했다. "배우로서 수많은 소재의 이야기, 배경의 이야기를 접한다"고 말문을 연 송강호는 "(출연에는) 그렇게 가볍지 않은 시대에 대한 경외감이 많이 차지했다.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그에 대한 경외감이 있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싱해에서 촬영을 진행했던 '밀정'의 배우들과 감독, 제작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임시정부청사를 방문했다. 송강호는 "배우들이 서로 약속도 안했는데 누구 할 것 없이 뿔뿔이 상해임시정부청사에 다녀오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누가 가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거길 꼭 가봐야 할 것 같았어요. 일반 관객의 경우에도 다 들르는 곳이 됐죠. 이 작품의 제작자 최재원 대표, 엄태구와 같이 임시정부청사에 갔어요. 다 돌고 나서 내려오면 방명록을 적는 곳이 있는데, 대표로 최재원 대표가 적었어요. 어깨 너머 뭐라 적나 봤더니 '누가 되지 않는 최고의 작품을...' 이라고 썼더라고요. 겁이 덜컥 났어요. 숙연한 마음이었죠. 이 작은 공간을 나라의 독립과 민족을 생각한 분들이 거쳐갔다는 것이 짠했는데, '누가 되지 않는 작품을 만들겠다'고 적는 모습에 뭔가 뿌듯함이 들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처음엔 겁이 덜컥 났어요. '정말 나 스스로 그럴 자신이 있나?' 싶은 마음이었죠."
뿌듯함보다 먼저 몰려온 부담감은 단숨에 송강호의 마음을 에워쌌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이렇게 거창한 이야기를 적을만큼 마음의 준비가 됐는지 생각하게 됐다"고 답한 그는 "그만큼 그 시대가 주는 무게감, 경외감이 있는 것 같다. 아마 어떤 배우들에게나 그럴 것 같다"고 말했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이어 김지운 감독과 네 번째 작업한 송강호는 절친한 동료이자 영화적 동지인 김 감독이 이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에 공감할 수 있었다.
"본인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김지운 감독은 20년 동안 영화 작업을 하며 수많은 장르적 변주와 작가로서의 테크닉, 연출가로서의 야심 등을 항상 작품의 어떤 부분에 녹여왔다. 이 작품 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수긍이 갔어요. 이 작품은 개인 연출자로서의 야심보다는 서사에 대한, 텍스트에 대한 진지한 자세에 집중해 대중들에게 가장 친절하게 접근하려 노력한 것 같았어요. 영화를 보니 이 양반이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작업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전 작업들과 그런 면이 달랐죠."
한편 '밀정'은 오는 9월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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