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소방수 출동입니다."
'라이언킹' 이동국(38, 전북 현대)은 냉정했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알면서도 경쟁은 절대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동국은 14일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이 발표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조별리그 9, 10차전 이란(8월 31일, 서울), 우즈베키스탄(9월 5일, 타슈켄트)전에 나설 26명의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14년 10월 파라과이, 코스타리카전 이후 2년 10개월 만의 대표팀 컴백이다. 사실상 2015년 1월 호주 아시안컵에서 제외되고 이후 3차 예선과 최종예선에서 선발되지 않으면서 A대표팀에 대한 기대를 접었던 이동국이었다는 점에서 더 그랬다.
그러나 신태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나이에 상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이동국과 염기훈(34, 수원 삼성) 등 노장 선수들의 선발 가능성을 내비쳤고 실제로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이동국은 스스로도 분위기 잡는 '맏형' 역할이 아닌 경쟁자가 되기를 원했다. 신태용 감독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대표팀의 일원으로 경기에 나서 보탬이 되고 싶다. 정신적 리더는 아니다"며 최전방 공격수로 경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충분히 경쟁 가능한 이동국이다. 이동국은 올해 초반 부상에도 불구하고 18경기 4골 2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김신욱(25경기 9골), 에두(20경기 10골 1도움)와 로테이션 체제로 출전 기회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더 놀랍다. 교체 자원으로 12경기, 선발 6경기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킬러의 인내심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K리그 통산 196골로 전인미답의 200골 고지에 네 골만 남겨뒀다. 도움도 68도움으로 K리그 첫 70(골)-70(도움) 클럽에 도움 2개만 남겨뒀다. 지난 시즌까지 8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해냈고 올해도 가능성을 열어뒀다. 대표팀에서 103경기 33골로 경험도 풍부하다.
역할도 다양하게 해내고 있다. 김신욱과 투톱으로 나서 최전방 공격수를 소화하면서도 원톱으로 나서는 경우에는 2선 공격진이 후방에서 침투하도록 처진 공격수처럼 빠져나간다. 그는 늘 "그라운드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무조건 기량이 우선이고 그것으로 평가받고 싶다"며 자신과의 한계와 외부의 편견을 깨는 데 모든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전매 특허인 발리 슈팅은 여전히 활용 가치가 높다. 이동국은 자신의 역대 발리 슈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2004년 12월 부산에서 열린 독일과의 친선경기를 꼽았다. 어느 위치에서나 발리 슈팅으로 골을 넣으며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능력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이동국이 이란전에 출전하게 된다면 38세 138일의 나이로 역대 두 번째 최고령 출전자가 된다. 1950년 4월 당시 김용식이 39세 274일이었다. 함께 선발된 팀 후배 김민재(21)와는 무려 열여덟 살 차이다. 19년 107일 동안 최장 기간 A매치 출전이라는 기록도 따른다.
기구한 운명과 또 만나게 된 이동국이다. 이동국은 2012년 2월 쿠웨이트와의 2014 브라질월드컵 3차 예선 최종전에 발탁됐다. 당시 한국은 쿠웨이트에 패하면 탈락도 가능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동국은 냉정한 킬러 본능을 보여줬고 골까지 넣으며 2-0 승리를 이끌어 한국을 최종예선으로 이끌었다. 당시 조광래 감독이 경질되고 전북에서 사제의 연을 맺었던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였다.
이동국은 명단 발표 뒤 자신의 발탁에 대해 조이뉴스24에 모바일 메신저로 감사함을 잊지 않으면서도 "소방수 출동입니다"고 딱 한 마디로 정의했다. 한국(승점 13점)은 우즈베키스탄(12점)에 승점 1점 차이에 불과하다. 이란에 패해 3위로 미끄러져도 우즈벡을 무조건 이겨야 본선에 간다. 해결사 본능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이동국의 깊은 표현이다.
구단을 통해서도 이동국은 책임감을 앞세웠다. 그는 "기쁨보다는 더 큰 책임감이 느껴진다. 한국 축구에 큰 위기일 수 있는데 남은 시간 감독님 이하 코칭스태프, 선수들과 잘 준비해서 반드시 월드컵 진출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이동국을 통해 정신적으로 해이해진 선수들이 집중력을 세워주기를 기대했다. 그는 이동국, 염기훈, 이근호(32, 강원FC)를 콕 집어 "현재 K리그에서 최고 기량이다. 이들은 배고플때 축구를 했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리라 본다. 우리가 왜 월드컵 본선에 나가야 하는지만 알려주면 충분히 후배들에게 자극이 되리라 본다"며 절실한 마음과 자세가 분명 나비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했다.
무엇보다 이동국의 솔선수범도 기대하는 눈치다. 그는 "(이동국이) 어느 후배보다 더 열심히 뛰고 보여주리라 본다. 이동국이 앞에서 열심히 뛰는데 후배들이 뛰지 않겠는가. 나이가 있어도 최고 기량이 있다고 봤다"며 반반이었던 선발 가능성이 100%가 된 이유를 전했다.
이동국에게 지워진 짐의 무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이란, 우즈벡전 경험은 풍부한 이동국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더 커졌다. 신태용 감독의 믿음에 부응해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고 아쉬움으로 남은 본선에 한 번 더 나설 기회를 스스로 만들 수 있을지에 축구팬들의 시선이 쏠린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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