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원작 소설이 그러했듯, 영화 역시 좋든 싫든 여러 가지 이야기의 중심의 서 있다. 각 개인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82년생 김지영'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과 남성,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더 나아가 서로를 이해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치열한 논쟁도 벌어지고 있지만, 이 역시도 이 소설과 영화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각해볼 여지를 안겨주는 '문제작' 혹은 '화제작'이라는 반증이다.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은 1982년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김지영(정유미)의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정유미가 지영 역을, 공유가 남편 대현 역을 맡아 부부 호흡을 맞췄다.
지영은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경력 단절 상태에 놓인 보통의 30대 엄마다.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딸을 키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현재의 삶이 행복하기도 하지만, 가끔 해지는 걸 볼 때면 심장이 쿵 내려앉을 때가 있다. 갑자기 가슴 속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는 것. 그래서 빨래를 돌리는 그 짧은 순간, 멍하니 베란다에 앉아 있기 일쑤다.
남편 대현은 그런 지영에게 생긴 큰 문제를 감지한다. 육아와 가사로 인한 피로, 명절 우울증까지 겹친 지영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을 하기 시작한다. 대현은 그런 아내를 걱정하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지영을 바라본다. 그러던 중 복직의 기회가 찾아오지만, 육아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이 역시 좌절된다.
'82년생 김지영'은 소설 출간 이후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작품이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화, 캐스팅 발표, 영화 개봉까지, 수많은 이들이 뜨거운 불판을 만들며 다양한 의견들을 쏟아냈다. 여기엔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공감 여부를 논하는 글도 있지만, 무차별적인 비난도 적지 않다.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은 비단 지영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성의 육아휴직 문제 역시 계속해서 토론의 주제가 된다. 육아와 가사 노동이 여성들만이 감당할 일이 아님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과 출산, 육아가 여성의 삶을 무가치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82년생 김지영'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다양할 수밖에 없다.
특히 결혼이나 육아를 해보지 않은 미혼들이 볼 때는 지영의 삶이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대현 역시 사회적 구조 속에서 눈치를 보고 걱정을 하기는 하지만, 그를 제외한 남성들은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거나 편견에 갇힌 구세대로 묘사한 점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지영을 도와주고, 조언을 건네는 제 3의 인물들은 거의 다 여성이라는 점 역시 남성과 여성을 분리해 생각하는 구조를 만들어 씁쓸함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의미가 있는 건 원작 소설에선 담지 않았던 지영의 희망적인 삶의 태도를 그려냈다는 점이다. 소설과 영화 모두 지영에게 찾아온 '빙의'라는 설정을 통해 개인의 목소리만이 아닌 전통적인 성 역할을 강요받으며 살고 사회적 편견과 싸워온 여성 다수의 목소리를 담아내려 했다. 특히 엄마인 미숙(김미경)이 지영의 현 상황을 접하며 쏟아내는 눈물과 따뜻한 포옹은 관객들의 마음을 크게 울리고 지나간다. 가족, 특히 늘 자식들을 위해 희생했던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극 초반 유모차에 딸을 태우고 밖에 나와 커피를 마실 때 들려온 타인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도망쳤던 지영은 자신의 생각을 목소리로 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여성과 남성, 이분법적인 접근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잘 모르는 타인을 바라보며 함부로 평가하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정유미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지만, 딸과 남편을 비롯해 가족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지영의 감정을 탄탄한 연기력으로 표현해냈다. 공유도 지영을 걱정하는 남편 대현의 상황과 심경을 깊이 있게 연기했다. '도가니'와 '부산행'에 이어 3번째 연기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이 있어 영화는 더욱 진한 여운을 안긴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개인의 몫이다. 이는 주연 배우인 정유미와 공유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해 달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남성과 여성을 가르는 '젠더 이슈'에 가려져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나 의미가 묻히지는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당한 비판과 건강한 담론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82년생 김지영'도 이같은 역할을 하는 영화로 오래도록 회자될 수 있길 원한다.
23일 개봉. 러닝타임 118분. 12세 이상 관람가.
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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