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인터뷰임에도 '착함'과 '겸손함'이 곳곳에서 묻어 나온다. 연기 칭찬엔 쑥스럽게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함께 한 배우들과 엄태화 감독, 스태프들에 대한 애정은 거침없이 쏟아낸다. 캐릭터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 자신이 연기한 도균 뿐만 아니라 모든 캐릭터에 공감한다며 '콘크리트 유토피아'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난 9일 개봉된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로, 거대한 지진이 모든 콘크리트를 휩쓸고 폐허가 된 도시를 배경으로 아파트 안팎에 살아남은 인간들의 각기 다른 심리와 관계성을 탄탄하게 그려내 관객들의 호평을 얻고 있다.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김도윤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 합, 엄태화 감독의 섬세하면서도 치밀한 연출력, 각고의 노력으로 탄생한 압도적 비주얼, 다양한 인간 군상 속 현 시대를 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한 메시지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수작이라는 평가다.
김도윤은 황궁 아파트 주민들과 섞이지 않는 인물인 도균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는 탄탄한 연기 내공을 바탕으로 복잡다단한 캐릭터를 한층 드라마틱하게 만들어내며 다시 한번 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에 김도윤은 지난 16일 진행된 조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과의 연기 호흡, 배우로서의 목표, 향후 계획 등을 솔직하게 전했다.
- 영탁(이병헌 분)이 도균의 집을 찾아와서 방을 뒤질 때 긴장감이 최고조였다. 연기할 때 어땠는지 궁금하다.
"많이 긴장됐다. 이병헌 선배님 연기가 정말 무시무시했다. 영탁을 보는 도균의 시선에 변화가 있다. 초반엔 영탁을 무시한다. 그러다 나중엔 두려움으로 바뀐다. 그 장면이 가장 두려워하던 장면인데, 실제로도 너무 무서웠다. 선배님이 계속 그러면 모르겠는데 카메라 밖에선 편하게 장난치고 분위기를 재미있게 만드신다. 그러다 카메라가 돌면 갑자기 정색해서는 어마어마한 연기를 보여주신다. 저에게도 '연기 좋아요', '잘하고 있어요'라고 하시다가 카메라 앞에선 돌변한다. 그 갭이 정말 크다."
- 같이 연기를 하면서 배우거나 깨닫는 지점도 있었을 것 같다.
"연기 잘하는 분들과 같이 연기를 했을 때 1차로는 '나는 왜 그렇게 못하지?'라면서 좌절의 단계가 온다. 2차는 '그걸 습득해서 잘해야지'라며 도전, 용기를 내는 과정이 온다. 하지만 이병헌 선배님은 그저 경탄만 하게 되더라. 저 연기와 해석을 따라 할 엄두가 안 난다. 나와는 다른 경지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정말 어마어마한 배우다."
- 생존의 위기 앞에서 이기적 혹은 잔인하게 변하는 인간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는 점이 인상적인 영화다. 혹시 영화 내 소름 돋는 지점도 있었나.
"다 소름이 돋았는데, 특히 명화(박보영 분)가 영탁의 집을 뚫고 들어가서 할머니에게 아들을 찾아주겠다고 하는 장면이 그랬다. 양면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기존의 명화라면 남의 집을 깨부수고 신발을 신고 들어간다는 식의 행동을 할 수 없었겠지만, 어느 순간 명화도 그런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소름 돋았다."
- 박보영 배우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연기적으로 티키타카를 주고받는 재미가 있었다. 테이크마다 변주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편인데, 보영 배우가 그걸 너무 잘 받아쳐 주고 새로운 자극을 준다. 연기를 원래 잘하는 선배님이다 보니 정말 좋았다. 요즘 무대인사를 다니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 박보영 배우는 평소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깊다고 느꼈다. 실제 그런 면을 느낀 점이 있나?
"정말 상대방 배려를 잘한다. 기본적으로 몸에 배려가 깔린 사람이다. 제가 재미없는 얘기를 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리액션을 해준다. 무대인사를 다닐 때도 버스 안에서 얘기를 많이 하는데 분위기가 정말 좋다. 화기애애하다."
- 이병헌 배우는 스스로 유머에 대한 욕심도, 자부심도 많은 편인데 유머 코드가 잘 맞는 편인가.
"진짜 자부심이 크고, 재미있으시다. '안구 교체설'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저는 그냥 리액션만 한다."
- 민성을 연기한 박서준 배우와는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너무 좋은 동생이자 선배다. '드림'을 봤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어떻게 한거냐' 물어보기도 했다. 평을 하는 건 아니지만, 서준 씨 연기가 좋다. 민성 캐릭터는 진폭이 크다. 겁이 많고 정의롭던 사람이 흑화되어 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그 과정의 설계가 너무 좋았다. 정말 신뢰가 가는 배우다. 민성과 명화가 정말 사랑스럽고 지켜주고 싶었다. 두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한다. 저는 그런 연기를 많이 안 해봤지만, 되게 어려웠을 것 같다. 서로 아낀다는 것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그 연기가 바탕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둘이 정말 잘한 것 같다. 또 총 들고 영탁에게 다가가는 장면도 무서웠다. 그 전의 민성이 아니었다. 정말 좋은 배우이자 사람이다."
- '콘크리트 유토피아' 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지옥', SBS '모범택시2' 등 그간 정말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줬다.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 비결은 무엇인가.
"그 인물을 저랑 동일시하지 않으려 한다. 그 인물에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연기 방식은 저와 맞지 않고, 몸과 정신 건강 모두에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대본을 볼 때 거리를 두다가 카메라가 돌면 집중해서 한다. 사람들은 저를 잘 모른다. 용산 아이맥스에서 영화를 볼 때 마스크도 안 했는데 아무도 모르시더라. 도균을 저와는 다른 인물로 표현을 했고 갭이 생겼다는 것에서 쾌감을 느낀다. 조그마한 제 자랑이라면, 제 이름 김도윤보다 캐릭터로 기억해주신다는 점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리뷰 같은 걸 보면 '안경 쓴 사람', '안경 쓴 곱슬머리', '809호'로 불러주시더라. 그런 분들도 제 전작을 본 분들이 계실 거다. 하지만 매치를 못 시키는 것 같다."
- 아이 셋을 둔 아버지인데, 책임감도 많이 생겼을 것 같다. 육아가 힘들긴 해도 아이들을 보며 얻는 힘도 클 것 같은데 어떤가.
"책임감이 생겼다. 열심히 하는 아빠가 되고 싶다.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원동력이다. 아이들이 너무 예쁜데 육아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온전하게 사랑하지 않나. 그래서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연기가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텐데, 배우로서의 목표는 무엇인가.
"오래 연기하는 배우이고 싶다. 또 진심으로 연기하고 싶다. 명배우의 명장면을 보면서 '저건 진짜다'라고 하면서 스스로 내 가슴을 칠 때가 있다. 가슴을 때릴 정도로 감동이 있을 때가 있는데, 아직 제 연기를 보면서는 그런 적이 없다. 그렇게 감정을 주고 가슴을 때리는 일이 죽기 전에 한 번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 가슴을 때렸던 배우, 혹은 작품을 꼽아준다면?
"정말 너무 많은데, 역시나 이병헌 선배님인 것 같다. '남한산성'에서 임금님 앞에서 대화하던 장면, '악마를 보았다' 마지막에 걸어가던 장면, '싱글라이더'의 캐릭터 등 너무 많다. 선배님께 얘기도 못 했는데 예전에 선배님 책도 샀다. 정말 선배님 연기는 경이롭다. '내가 10년이 지나면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저분처럼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죽기 전에는 이병헌 선배님처럼 가슴을 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힘들었을 때도 있었나.
"항상 힘들다. 그중에서도 첫 촬영을 나갈 때 차 안에서 내리기 바로 직전이 가장 힘든 것 같다. 오만가지 감정이 든다. 낯선 현장 앞 외로운 싸움을 한다. 문을 열고 나가서 카메라가 돌면 괜찮은데, 그 전까지는 '준비한 것이 맞나'라며 스스로 의심한다. 평소 저에 대한 의심이 많은 스타일인데, 연기 시작한 이후 매일 똑같이 하는 생각이 '나에게 재능이 있나?'다. '없는 것 같아', '어쩌면 재능이 있어'라는 생각을 계속 반복하는데,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러지 않을까 싶다."
- 정해진 차기작이 있다면?
"촬영을 마친 두 편의 드라마가 나올거고, 티빙 '우씨황후' 촬영을 시작했다. 또 영화 '드라이브' 개봉을 준비 중이다."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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