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흐름의 중심이 신문, 방송에서 인터넷으로 급격히 옮겨가던 2000년대 중반, 야구팬들을 열광시킨 한국인 빅리거의 무게 중심도 변화를 보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단군 이래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군림했던 박찬호가 그 빛을 잃기 시작했고, 박찬호가 태양이라면 달과도 같던 김병현 역시 점차 입지를 잃고 있었다.
박찬호는 텍사스 레인저스 이적 이후 잦은 부상으로 인한 깊은 슬럼프에 빠졌고 김병현도 선발로 전향한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들의 공백을 메운 건 서재응과 최희섭. 하지만 이들도 박찬호와 김병현의 부진으로 인한 팬들의 아쉬움을 완벽히 달래주지는 못했다.
2003년 뉴욕 메츠 소속으로 9승12패를 올린 서재응은 이후 3년 동안 5승10패, 3승12패, 3승4패를 거두고 한국 프로야구로 복귀했다. 최희섭은 2004년 홈런 15개를 쳐내며 가능성을 보였지만 결국 2005년을 끝으로 한국 프로야구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스타의 대를 이을 한 줄기 희망이 추신수였지만 2005년에야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 성공까지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다시 한 번 국내 팬들이 메이저리그에 열광하는 시대가 찾아올까.
강산이 절반쯤 바뀐 지금, 국내 팬들은 메이저리그에 다시 열광하고 있다. 깊은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한 박찬호는 지금 이 순간 메이저리그 꿈의 무대라는 월드시리즈에 올라 있다.
비록 예전과 같은 선발이나 팀의 주축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단순한 성적과 보직 때문이 아니라 그의 월드시리즈 진출은 그가 겪은 시련 때문에 예전과는 또 다른 감동을 팬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2005년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한 박찬호는 2006년 시즌이 끝난 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자유계약선수가 됐다가 어렵게 뉴욕 메츠에 입단했다. 시즌 출발은 역시나 마이너리그였다.
마이너리그에 머물다 한 경기 선발로 등판한 박찬호는 다시 마이너리로 내려가 2007년의 남은 시즌을 보내야 했다. 모두가 "이제는 힘들겠다"며 그에 대한 희망을 내려 놓는 순간이었다. 그를 아끼는 팬들도 안쓰러움에 이제는 그만두기를 바랄 정도였다.
그러나 2008년 친정 LA 다저스로 복귀해 불펜 투수로 재기의 가능성을 보인 박찬호는 올 시즌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해 팀 불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내며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시즌 막판 다시 햄스트링을 다치는 바람에 디비전 시리즈 로스터에서 탈락했다가 다저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다시 마운드에 오른 박찬호의 모습은 팬들에게 전율로 다가왔다.
추신수의 변신도 눈부시다.
2005년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 추신수는 유망주라는 딱지가 부담스러운 마이너리거였다. 잠시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10경기에 나서긴 했지만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의 벽을 넘지 못했다.
분명 다른 스타일이었지만 시애틀은 그에게서 제2의 이치로를 요구했고, 이런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한 추신수는 2006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이적했다.
시애틀은 이치로를 중견수로 기용하고 추신수를 우익수로 내세우려 했지만 이치로가 이에 반대하는 바람에 추신수는 팀내 설 자리를 잃었다. 이치로만 중견수 전업을 받아들였어도 팀을 옮기지 않을 수 있었기에 더욱 서러운 트레이드였다.
그게 전화위복이 될 줄이야. 트레이드와 함께 당장 팀의 플래툰 시스템 속에 외야수로 출장 기회가 늘어났다. 비록 절반의 성공이었지만 그 절반은 또 다른 절반을 보장하고 있었다.
2007년 팔꿈치 수술로 고작 6경기 출장에 그쳤지만 지난해 94경기에 출장하며 입지를 다진 추신수는 올시즌 156경기에 출장해 타율 3할과 함께 홈런 20개와 도루 20개를 돌파하며 메이저리그의 차세대 슈퍼스타로 꼽히고 있다.
또 다른 5년 뒤... 이제 선수생활 마무리에 접어든 박찬호가 그 때까지 유니폼을 입고 있다면 그야말로 축복이 될 것이다. 이제 막 꽃을 피운 추신수는 박찬호가 한때 이르렀던 정상에 깃발을 꽂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 또 다른 한국인 스타가 탄생할 수 있을지. 그렇다면 누가 이들의 뒤를 이어 5년 후쯤에 세계야구를 호령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알링턴=김홍식 특파원 dio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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