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데뷔 18년차, 최강희는 여전히 보여줄 것이 많은 배우다. '180도 변신'이나 '악역 도전' 같은 극단적 수식어와는 거리가 먼 연기 인생을 살아왔지만 그는 자신만의 또렷한 색깔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왔다. 맑고 큰 눈망울에 어울리는 착하고 건강한 캐릭터는 최강희의 전매특허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정익환 감독의 새 영화 '미나문방구' 속 그의 모습도 결과적으론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 최강희는 쓰러진 아버지 대신 일일 평균 수입 3만원의 '미나문방구'를 떠맡은 강미나로 분했다. 10살 어린 여자친구와 결혼 소식을 전해온 애인, 도통 굽힐 기미가 없는 뻔뻔한 세금탈루자에 치이다 정직 처분을 받은 미나는 결국 귀향해 문방구를 처분하기로 결심한다. 열혈 공무원 미나는 고향에서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고, 답답하게만 느꼈던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조이뉴스24와 만난 최강희는 "미나는 처음부터 다혈질 캐릭터"라고 설명한 뒤 "사회생활을 하며 '성질대로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내가 봤을 때 미나는 참 멋진 사람"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팔릴 줄 알았던 문방구지만 매입자는 "손님이 너무 없더라"는 불만과 함께 거래를 망설인다. 그도 그럴 것이, 푸근한 인심으로 손님을 모았던 아버지와 달리 미나는 시종일관 짜증 가득한 얼굴로 아이들을 내쫓기 일쑤. 미나는 문방구 처분을 위해 3+1부터 1+1을 오가는 폭탄 세일부터 눈높이식 세일즈 전략으로 '초딩' 단골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영화를 이끄는 것은 주인공 미나와 초등학생 단골 손님들, 모교로 부임한 교사 강호(봉태규 분)다. 수적으로나 비중으로나 아이들의 역할이 큰 영화였던 만큼 최강희는 아역 배우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촬영에 임했다. '미나문방구'에는 MBC '최고의 사랑'에서 '띵똥'으로 사랑받은 양한열을 비롯해 영화 '남쪽으로 튀어'의 박사랑, '연가시'의 엄지성 등 출중한 아역 스타들이 출연한다.
"꼭 울지 않아도 되는 장면이었는데도 아이들끼리 경쟁을 하며 대성 통곡을 하는 걸 보고 '참 연기를 잘 한다'고 느꼈어요. 사실 제 캐릭터가 있다 보니 아역 배우들에게 많이 다정하게 대하지는 못했어요. 평소 아이들을 크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요. 하지만 전 늘 동심을 닮고 싶어했어요. 제 유년 시절을 동경하고요. 어른들은 사람들을 신경 쓰느라 잘 놀지 못하는데, 아이들은 아무 말이나 하고 아무 춤이나 추고, 부끄러움이 없잖아요. 동경할 만하죠."
지난 3월 종영한 MBC 드라마 '7급공무원'의 주원을 비롯해, 최강희는 많은 상대 배우들이 최고의 파트너로 꼽는 연기자다. 이를 듣고 멋쩍게 웃어 보인 최강희는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참 새삼스럽다는 기분이 든다"며 "'진짜 이렇게 생각했어? 그렇게 순수한 주원이 나를 보며 순수함을 배웠다고?'싶어 웃음이 난다"고 말했다.
영화의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최강희는 이번 영화에서 호흡을 맞춘 봉태규를 향해 다시 작품을 함께 하고 싶다고 러브콜을 보낸 바 있다. 이에 봉태규는 "최강희와 호흡은 최고였다"며 "함께 연기한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근래 남녀 배우들 중 이런 호흡은 없었을 것"이라고 자신해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SBS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함께 한 이선균 씨와 이번 영화에서 호흡한 봉태규 씨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남자 배우 1,2위에요. 너무 예쁘거나 연예인 같은 배우들은 남자로 느껴지지 않거든요. 오히려 여자 연예인보다 외모나 주변 시선에 더 신경쓰는 분들도 많고요. 기자간담회에선 봉태규 씨와 멜로를 찍고 싶다고 말했지만, 생각해보니 다른 장르가 더 좋을 것 같아요. 미미한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루저 영화라든지.(웃음)"
그간 최강희는 사랑스럽고 건강한 매력의 여주인공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지난 2006년 손재곤 감독의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은 그런 최강희가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 작품이었다. 2009년작 정기훈 감독의 '애자' 역시 최강희에게 숨어 있던 다른 얼굴이 스크린에 펼쳐진 영화였다.
"한 배우를 놓고 다양한 역할을 생각하는 분들이 생각만큼 많지 않아요. 영화계도 시장이니 안전을 생각할테고, 성공 사례를 토대로 캐스팅 제의를 하니까요. 제게 실험적인 역을 맡기고 싶다는 분들이 많지 않았어요. '달콤 살벌한 연인'의 손재곤 감독님께는 그래서 아직도 감사해하죠."
담담한 얼굴 아래 변신에 목이 말라있던 그에게 '최강희표' 격정 멜로를 기대해도 될지 물었다. 최강희는 "저도 궁금하다"며 "사람들은 상상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 웃으며 말했다.
"좋게 말하면 좋지만, 제 이미지가 '건어물녀'의 상징처럼 만들어졌잖아요. 이제 격정 멜로 할 거에요.(웃음) '귀엽게 망가지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면서 '미나문방구'를 찍었어요. 그래도 베드신을 찍을 생각은 없지만, 격정적인 감정이 있는 영화라면 꼭 출연하고 싶어요."
지난 2007년 골수 기증으로 백혈병 환자를 살린 최강희는 이후에도 환경 운동에 대한 관심을 표하기도 하며 '선행 배우'의 꼬리표를 달게 됐다.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는 손수건이나 머그컵을 휴대하는 습관을 이야기해 반향을 얻기도 했다. 진정성이 묻어나는 모습이었지만 '착한 배우' 이미지에 내심 행동 하나 하나에 부담이 생기지는 않았을지 궁금했다.
"제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만 다른 분들께 권장하고 싶어요. 예를 들면, 저는 모피 옷을 입지 않지만 그걸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채식주의자는 아니고요.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마치 환경에 반하는 모든 것에 앞장서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저는 그럴 자신은 없어요. 지킬 수 있는 것만 이야기하고 싶고요. 아주 가끔 손수건을 가방에 두고 화장실에 갔을 땐, 휴지로 손을 닦으면서 누가 보진 않는지 주변을 살피게 된다니까요.(웃음)"
50분 간 이뤄진 최강희와의 대화는 유쾌하고 담백했다. "격정적인 멜로 연기를 하고 싶다"거나 "내가 지킬 수 있는 것만 남에게 권하고 싶다"고 말할 땐 특유의 맑은 눈망울이 더욱 반짝거렸다. '미나문방구'는 향수를 자극하는 설정이 주는 쏠쏠한 재미 외에도, 솔직하고 인간적인 배우 최강희를 만나기에 더없이 좋은 영화다. 오는 16일 개봉한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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