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안컵]홍명보호, 정신력-조직력-생존력 삼위일체 보여주다

[이성필기자] 살아 남겠다는 선수들의 자세, 조직력, 스피드와 무한 체력을 앞세운 압박. 홍명보식 '한국형 축구'의 실체는 이런 각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돌아갔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2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 2013 호주와의 첫 경기에서 압도적 경기 내용에도 아쉽게 0-0으로 비겼다.

지난 17일 소집 후 사흘 훈련을 한 홍명보호는 수비 조직력, 공격과 세트피스 등을 차례로 다듬은 뒤 경기 전날 전체적인 조직력 완성에 공을 들였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홍 감독은 선수들의 정신 자세를 바로잡는데 집중하며 새로운 대표팀 만들기에 주력했다.

특히 한국형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홍 감독은 취임 당시부터 "한국축구는 빠른 선수들, 스피드로 기억된다. 볼 점유율을 늘리면서 역습으로 빠른 공격을 한다면 장점이 될 수 있다"라며 볼 점유율에 집중됐던 축구의 방향 전환 의지를 분명히 했다.

호주전에서는 홍 감독이 얻고자 했던 모든 것이 그라운드에 펼쳐졌다. 이번 대표팀에 선발된 23명 중 절반 정도는 2014 브라질월드컵 본선에서 뛸 수 없다. 유럽, 중동에서 뛰는 해외파와 K리그에서 뽑히지 않은 경쟁력 있는 선수들까지 포함하면 생존 확률은 더 줄어든다.

자연스럽게 대표팀의 정신 무장은 단단해졌다. 이날 선수들은 조금도 쉬지 않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몸을 던지며 호주의 공격을 막는 등 최근 떨어진 대표팀에 대한 신뢰를 찾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누구도 몸을 사리지 않았고 홍 감독도 손뼉을 치며 독려했다.

죽어있던 압박도 살아났다. 중앙 미드필더 이명주(포항 스틸러스)-하대성(FC서울)이 왕성한 활동력으로 공간을 장악했다. 김동섭(성남 일화) 등 공격진도 전방에서부터 호주의 전진을 막았다. 호주는 전반 39분 세트피스 기회가 주어지고 나서야 제대로 된 슈팅을 할 정도로 한국의 강력한 압박에 압도 당했다.

전원 공격 전원 수비가 되고 균형이 무너지지 않으면서 스피드를 앞세운 한국식 축구도 이뤄졌다. 공격과 미드필드, 수비 사이에 일정한 간격이 유지됐고 좌우 공격도 번갈아가며 호주를 공략했다. 특히 오른쪽 풀백 김창수(가시와 레이솔)와 날개 고요한(FC서울)이 수시로 자리를 바꿔가며 호주 수비 뒷공간을 흔들었다. 공격형 미드필더 이승기(전북 현대)와 왼쪽 날개 윤일록(FC서울)도 틈만 나면 돌파하고 슈팅을 하며 호주 수비에 균열을 가했다.

경기를 관전한 신태용 JTBC 해설위원은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눈빛이 살아있다. 그만큼 정신 무장이 잘 됐다는 뜻이다"라며 "서로 즐겁게 축구를 하려는 것이 보인다. 공간을 유기적으로 활용하는 플레이도 잘 이뤄졌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선수들이 축구의 기본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또, 동아시안컵에서 못하면 다음 기회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눈도장을 찍으려는 자세가 역동적인 경기력을 만든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