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올 시즌 K리그는 겨울 훈련부터 선수 유출로 몸살을 앓았다. 지난해 12월 시즌이 종료된 뒤 FC서울 중앙 수비수 김주영이 중국 상하이 상강으로 이적하면서 묘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올 2월에는 전북 현대 미드필더 권경원(알 아흘리)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리그로 향했다. 같은 달 서울 공격수 에스쿠데로(장쑤 쑨톈)는 중국 슈퍼리그로 향했다. 3월에는 전북 현대 중앙 수비수 정인환이 허난 전예 유니폼을 입었다.
과거 해외 진출은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은 선수들이 리그 수준으로는 한 수 아래면서 거액을 보장하는 중동으로 가는 것이 유행이었다. 또는 K리그 드래프트에서 낙방한 자원이 일본 J리그나 J2리그(2부리그)에 도전하는 유형이었다. 유럽 진출을 원했던 이들은 J리그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유럽 빅리그 직행이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아시아권 국가 진출은 생계형으로 보는 시선이 팽배했다.
최근 K리그 중 가장 많은 돈이 이적 시장에 나왔다고 평가되던 2007년은 안정환, 에두가 수원 유니폼을 입었고 최성국, 김동현, 한동원, 조용형이 성남 일화에 안겼다. 울산 현대는 정경호, 김영광, 오장은, 현영민 등을 부르는 등 화끈한 전력 보강이 있었다.
다만, 선수 몸값에만 돈이 돌았을 뿐 리그 환경 변화에는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자금이 선순환되지 않고 동맥경화를 일으키면서 K리그에는 체질 개선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사이 타 국가 리그의 지속적인 투자와 성장이 이어지면서 선수들의 이적은 점점 더 다변화됐다. 실력에 맞는 거액을 제시하면 팔려가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 중동은 물론 태국, 인도네시아 등도 거액을 아끼지 않고 있다.
대전 시티즌에서 최은성(현 전북 현대 골키퍼 코치)에 가려 후보에 불과했던 유재훈(발리 유나이티드)은 인도네시아 리그 최고 골키퍼로 인정받고 있다. 페르시푸라 자야푸라를 우승과 함께 아시아 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로 이끌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에서 귀화 후 국가대표를 시켜주겠다고 제안을 할 정도였다. 투자로 창단한 발리 유나이티드가 그를 빼가면서 가치는 더욱 폭등했다.
K리그를 지속해서 관찰하고 있는 중국은 저인망식으로 선수들을 쓸어가고 있다. 국내 선수들의 경우 수비수나 미드필더를 집중적으로 수혈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의 성실함과 책임의식이 수비나 미드필드 소화에 적격이라는 것이다.
이미 중국에는 한국 선수들이 대거 진출해 있다. 하대성(베이징 궈안), 장현수(광저우 푸리),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 등 국가대표급 자원이 뛰고 있다. 반면 장쑤 쓘텐에서 뛰었던 윤신영은 대전 시티즌, 허난 전예의 이지남은 전남 드래곤즈로 한 시즌 만에 유턴했다. 명과 암이 확실하게 교차하는 것이다.
여름 이적 시장이 열리면서 K리그에는 또 한 번 유출이 휘몰아쳤다. 전북 현대 공격수 에두는 중국 갑리그(2부리그) 허베이 화샤싱푸, 수원 삼성 공격수 정대세는 시미즈 S-펄스(일본), FC서울 고명진은 알 라얀(카타르) 등으로 이적했다. 겨울, 여름마다 구단들은 선수 단속에 나서며 전력을 유지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됐다.
선수유출을 막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K리그 구단 종사자들은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있다. 전북 현대를 제외하면 관중이 지속적으로 늘지 않는 데다 살림살이를 줄이는 기업구단들로 인해 이들에게 선수를 팔아 수익을 남기던 시민구단까지 유탄을 맞으면서 점점 더 선수들이 K리그에서 뛰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A구단의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B선수는 3억원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 개인 기록 등 여러 면에서 나쁘지 않아 인상을 해줘야 했지만 타 구단들이 군살을 빼고 있어서 50% 인상이라는 카드밖에 던지지 못했다. 당연히 해당 선수는 이적을 선언했고 해외로 빠져나갔다"라며 붙잡을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했다.
물론 해외 구단들이 아무 생각 없이 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이적 시장에 밝은 한 에이전트는 "기본적으로 영입 대상 선수의 경기 비디오를 스카우트 파트에서 최소 50경기 이상은 살펴보고 결정한다. 영입을 결정하면 확실한 연봉 보장으로 선수에게 책임 의식을 심어준다"라고 전했다.
태국 등 동남아도 마찬가지, 한 관계자는 "국가대표 경력이 없는 선수는 현지로 불러 테스트를 한다. 기량이 미달이면 냉정하게 영입하지 않는다. 이는 상, 하위권 구단에 관계없이 똑같다"라며 현미경 검증으로 선수 영입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K리그의 고민은 쉽게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중국, 중동의 씀씀이는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물론 해당 국가들의 경제 상황과 맞물린다고는 하지만 쉽게 사라질 거품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아시아 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의 성장이라는 외부효과까지 있다.
한 구단 실무자는 "A급 선수가 나간 자리를 B급이었던 선수가 성장하며 메워주면 그것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다. 그간 구단들이 경영 합리화는 뒤로 하고 선수 돈주기에 바빴던 것이 사실이다. 될성부를 떡잎들이 유럽 빅리그 유스팀에서 성장하는 등 K리그의 위협요인은 상당히 많다. 구단들이 실력 향상과 합리적 경영을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라고 진단했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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