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 11월 경신고 이하영 교장과 장운수 감독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하다 숙소를 이탈한 차범근은 고향인 경기도 화성에서 편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서는 몇 차례나 사람을 보내 돌아오라고 했음에도 차범근이 꿈쩍도 하지 않자 “수업일수가 부족해 졸업을 할 수 없다”고 달래는가 하면 “퇴학을 시키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러던 중 차범근의 운명을 바꿔놓는 일이 벌어졌다.
차범근의 고향과 이웃한 오목리가 본가인 황재만을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고려대 1학년인 황재만은 청소년대표로 선발될 만큼 출중한 기량을 갖춘 선수로 이 고장에서는 출세한 인물에 속하는 선배이기도 했다.
차범근과 청소년대표 선발전 후보멤버이기도 한 황재만과의 만남은 차범근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연세대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던 차범근은 연세대가 아니라면 연세대와 버금가는 고려대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황재만을 만났으니 모든 고민이 눈 녹듯 해결된 것이다.
게다가 차범근으로부터 이런저런 사정을 듣고 난 뒤 “고민을 훌훌 털어버리고 고려대로 와라. 내가 모든 것을 처리해주겠다”는 말 한마디는 복음과도 같았다.
차범근은 마음을 정리하자 곧바로 서울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황재만으로부터 차범근의 소식을 전해 들은 장원직 고려대 감독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장 감독은 70년 10월 진주에서 열린 개천예술제 초청대회에서 경신고 2학년이던 차범근의 플레이에 매료됐지만 연세대로 이미 결정이 난 것과 다름없던 터라 그동안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애만 태워왔다.
그런데 그 차범근이 제 발로 고려대로 오게 됐다니 그럴 만도 했다.
보름여 만에 경신고 축구부 숙소로 돌아온 차범근은 이하영 교장을 찾아가 고려대로 가겠다는 자신의 뜻을 밝혔다.
그러자 “안돼!”라는 이교장의 외마디가 교장실 밖에까지 들렸다.
조이뉴스24 /김덕기(축구전문대기자)chooggu@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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