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A매치가 하고 싶은데…."
지난 4월 평양에서 열렸던 2018 여자 아시안컵 예선은 기적으로 물렸다. 인도·북한·홍콩·우즈베키스탄과 한 조에 묶였던 한국은 북한에 다득점에서 앞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본선에 올랐다는 사실은 5위까지 주어지는 2019 프랑스 여자월드컵에 출전할 가능성을 이어간다는 것과 같다. 당시 여자 대표팀은 위기의식으로 똘똘 뭉쳤다. 변변한 A매치 한 번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아시안컵 예선을 준비했다.
물론 앞선 3월 키프로스컵에 나가 오스트리아·스코틀랜드·뉴질랜드·스위스 등과 만나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A매치가 주기적으로 있지 않다는 점은 대표팀의 속을 태운다. 오죽하면 당시 지소연이 '조이뉴스24'와 인터뷰를 도중 "A매치 한 번이 소중한 기회인데 정말 치르기 힘드네요"라고 토로할 정도였다.
지난 8일 일본 지바에서 시작된 2017 동아시아 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도 마찬가지다. 두 달여 전인 지난 10월 미국과 원정 2연전을 치르며 챔피언십을 준비했다. 그러나 간격이 문제였다. 4월 평양 경기 후 무려 6개월 만이다.
일정과 질도 문제였다. 미국은 여자 축구 최강이라 한국 입장에서도 경기 자체가 고마운 일이었다. 그러나 장거리 원정을 떠나 제대로 컨디션을 만들지 못하고 1차전을 치른 뒤 미국 내에서 다시 한 번 먼거리를 이동했고 사흘 만에 경기를 치렀다.
지난 10월 '조이뉴스24' 창간 13주년 인터뷰에 응했던 윤덕여 여자대표팀 감독은 "미국에서 이동이 참 힘들었다. 일찌감치 미국이 뉴올리언스를 비롯해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두 도시를 (경기 장소로)잡아 놓았는데 먼 거리를 오가면서 많이 피곤했던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깊은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주기적인 A매치 학습이 되지 않았으니 어려움을 겪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첫 경기에서 한국을 3-2로 꺾은 일본은 올해 3월 스페인 알가르베컵에 나서 스페인·아이슬란드· 노르웨이·네덜란드 등 유럽을 경험했다.
4월에는 코스타리카, 6월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상대로 A매치를 치렀다. 7월에는 브라질·호주·미국과 네이션스 토너먼트 대회를 치렀다. 10월 스위스, 11월 요르단과 각각 A매치를 가졌다. 이번 대회 전까지 무려 12경기다. 양과 질 모두 우수했다.
억지로 끼워 맞춘 A매치를 치른 한국과는 차원이 달랐다. 북한도 3월 키프로스컵에 나서 이탈리아·스위스·벨기에·아일랜드와 경기를 가졌다. 4월 예선에서 한국에 밀렸지만 이후 중국과 A매치를 시작으로 10월 중국 영천 4개국 대회에서 중국·브라질·멕시코와 만났다. 기량 저하로 추락하다 부활을 선언한 중국은 이번 대회 전까지 무려 16경기를 치렀다. 거의 한 달에 한 번 넘게 경기를 한 셈이다.
결국은 대표팀을 이끄는 주체의 관심 정도가 결과에서 차이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정몽규 회장은 2019 여자 월드컵 유치를 위해 정력적으로 움직였지만 프랑스에 밀린 뒤에는 여자 축구에 대해서는 특별한 행동이 없다. WK리그 이천 대교가 팀을 해체하는 과정에서는 대책도 없었다.
북한은 한국을 꺾기 위해 4월의 아픔을 자양분 삼아 더 칼을 갈았다. 이번 대회 나서는 선수단 대부분은 연령별 대표팀에서 충실하게 성장한 자원이다. 2011 독일 여자 월드컵 금지 약물 양성 파문으로 징계를 받아 2015 캐나다 여자 월드컵에 나서지 못하고 2019 여자 월드컵도 한국에 가로 막혔지만 연령별 대표팀부터 차근차근 육성했다.
그 결과 지난해 17세 이하(U-17)와 20세 이하(U-20) 월드컵 정상에 연달아 올랐다. 승향심과 김윤미 등 힘과 기술을 겸비한 자원들이 대거 성인팀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지소연이 없어 공격을 풀지 못하며 애를 먹는 대표팀과는 차원이 달랐다.
김광민 북한 감독은 11일 한국을 1-0으로 이긴 뒤 "4월 경기를 되풀이하면 안된다"는 말을 네 차례나 반복했다. 그는 "높은 정신력과 집단력(조직력)으로 승리했다"며 "한국과 기술 및 정신력 대결에서 모두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밀린 윤덕여호는 이를 갈았다. 이민아(인천 현대제철)는 죄인이 될 필요가 없는데도 고개를 푹 숙였다. 주장 조소현(인천 현대제철)도 마찬가지다. 대표팀 관계자는 "분위기가 처질 것 같아 걱정된다. 선수들이 밝게 웃도록 해야겠다"며 걱정했다.
윤덕여호에 이번 대회는 내년 4월 요르단 여자 아시안컵를 준비하는 과정 중 하나다. 하지만 아시안컵에서도 전 대회 준우승국 호주에 강호 일본 그리고 다크호스로 꼽히는 베트남과 함께 죽음의 B조에 묶였다. 프랑스로 가려면 4강 안에 들던가 A조 3위로 예상되는 태국 또는 요르단과 운명의 한 판을 벌여야 한다. 중동 경기 경험이 거의 없는 여자 대표팀에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의 연속이다.
"월드컵에 나가야 여자 축구가 산다"며 정신력을 모아 본선에 오른 여자대표팀이다. 이번 대회에서 일본과 북한에 석패하며 현실을 확인한 여자대표팀을 본 축구협회의 미래 계획은 무엇인지 새삼 궁금해진다. 남자 대표팀과 같은 대우가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최소 6개월 내 일정이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이번 대회 종료 후 4월 아시안컵 개막까지 정리된 일정은 아무것도 없다. 경험을 쌓고 싶은 여자 대표팀에 투혼을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다.
조이뉴스24 지바(일본)=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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