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픽픽 쓰러지는데, 이렇게 하찮아도 될까 싶었어요."
정경호가 '보호본능'을 제대로 자극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는 섭식장애에, 하찮게 픽픽 쓰러지고, 여주인공의 에너지에 휘둘린다.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이지만, 자꾸만 끼니를 잘 챙겨주고 싶다. 정경호가 '병약미 남주'의 신기원을 열며 매력을 제대로 살렸다. 여기에 달달한 로맨스와 멜로 눈빛까지 곁들어지니, 정경호의 재발견이라는 찬사가 쏟아진다.
배우 정경호는 지난 5일 막내린 tvN 토일드라마 '일타스캔들'에서 최치열 역을 맡아 인기를 끌었다.
'일타스캔들'은 사교육 전쟁터에서 펼쳐지는 국가대표 반찬 가게 열혈 사장과 대한민국 수학 일타강사의 달콤쌉싸래한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첫 방송 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시작해 14회 14.3%까지 시청률이 치솟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정경호는 "'일타스캔들'이 올해 1월 시작하는 첫 드라마라 따뜻한 드라마로 남았으면 했다. 다행히 많은 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감사하다"고 활짝 웃었다.
지금껏 수많은 작품을 해왔던 정경호지만 "유별나게 이번 작품은 연락을 많이 받았다"라며 "일타강사와 반찬가게 주인의 로맨스라는 설정이 신선했던 것 같다. 남행선부터 지실장까지, 모든 캐릭터가 살아있어서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고 드라마의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정경호는 "'일타스캔들'에서 정말 아등바등 노력을 하진 않았다. (유제원) 감독님과 (양희승) 작가님이 너무 놀이판을 잘 깔아주셨고 편하게 해주셨다. 더군다나 전도연 선배님도 계시지 않나"라며 "7개월 동안 판서 이외에는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없고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고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정경호가 연기한 최치열은 '1조원의 남자'로 불릴만큼 연봉도, 인기도 탑인 수학 일타 강사다. 명예와 재력, 훈훈한 비주얼까지 갖춘 완벽남처럼 보이지만 강의식 바깥에서는 불면증과 섭식장애를 겪고 있다.
정경호는 "대본에 바싹 마른 몸'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변화를 줄 필요가 없었다"고 "연극에서는 동성애에 걸린 에이즈 환자를 했고, '슬의생' 준환이도 그랬다. 관리를 안했다"고 웃었다.
최치열에게 빼놓을 수 없는 단어는 '병약미'였다. 핸드볼 국가대표 출신으로 씩씩하고 에너지 넘치는 행선과 대비되어, 그의 병약미는 더욱 돋보였다. 정경호는 일타강사라는 독특한 직업군에, 자신만의 '하찮미'를 더해 인간적인 캐릭터를 완성했다.
"일타강사라는 역할도 너무 생소했고, 처음 맡아봤어요. 1조원의 남자라고 불릴 만큼 직업적으로 최고지만, 밥도 못 먹고 덩그러니 혼자 있는 모습이 그려져요. 어떻게 하면 인간적인 모습이 보여질지 고민했고, 제가 잘할 수 있는게 뭔지 생각했어요. '하찮미'를 첨가하면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대본에 나와있는 부분에서 '나다움'을 살렸어요. 그런데 초반에 1부부터 4부까지 후시녹음을 하러 갔는데 픽픽 넘어지는 장면 밖에 없더라구요. '이렇게 하찮아도 될까' 싶었어요.(웃음)."
실제 수학 강사라고 해도 믿을 만큼, 강의실에서 수업을 하는 정경호의 연기도 화제가 됐다. 정경호는 안가람 등 실제 수학 강사에 자문을 받는가 하면, 수학공식을 달달 외우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일타라는 단어도, 이런 세계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더군다나 수학은 1도 몰랐어요. 수학 강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됐어요. '일타강사' 선생님 강의도 당연히 봤고, 학원 가서 수업도 들어보고 이야기도 나눠봤어요. 수학이 뭔지 이해하려고 하진 않았고, 드라마에 총 12문제가 나오는데,공식을 외우려고 했어요. 가장 힘든 건 판서(칠판 글씨)였어요. 칠판을 직접 사서 계속 쓰는 열심을 했죠. 리미트, 숫자2, 루트 방향도 (치열식으로) 연구했죠. 발차기는, 학생들을 주목 시킬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나온 거죠."
특히 그는 일타강사의 삶이 연예인의 삶과도 맞닿아있어 공감이 갔다고 했다. 정경호는 "드라마에서도 나오지만 경찰서에서 '나 누군지 몰라요?' 하는데 일타강사들만의 세계가 있다. 엄마들이 있는 커뮤니티 도 있고, 일타강사도 가십의 대상이 된다. 선생님들도 수업이 끝나면 후기를 바로 찾아보는데, 연예인과 비슷한 상황들이 많더라"라고 말했다.
극 초반 '일타강사' 치열의 카리스마와 냉철한 모습이 주목을 받았다면, 행선과의 로맨스가 시작되며 변화하는 모습이 시청자의 마음을 두드렸다. 사랑 앞에서 솔직하고 달달했고, 그 가족에 진심으로 다가섰다. 정경호의 매력이 가장 빛을 발한 장면도 전도연과의 로맨스에서 나왔다. 시청자들은 '열선커플'에 설렜고, 최치열에 반했다.
"드라마 흐름상 운명적인 이끌림을 잘 표현하려고 했어요. 행선의 가족에 스며드는 치열의 모습에 중점을 두고 싶었어요. 가족이 되는 과정. 최치열의 성장하는 모습에 초점을 뒀죠."
동경해왔던 배우 전도연과의 호흡은 더할 나위 없었다. 정경호는 "선배님은 모르겠지만 촬영할 때 투샷을 한 번씩 돌려보고 했다"라며 "동경해왔고, 존경하는 사람과 연기를 하는 자체가 너무 멋진 순간의 연속이었다. 끝날 때까지 너무 좋았다"고 '팬심'을 드러냈다.
"선배님의 연기는 감히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억지로 표현하지 않았어요. 어느 순간 선배님은 행선 그 자체였어요."
정경호는 내년이면 데뷔 20년을 맞는다. 드라마 데뷔작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시작으로, '개와 늑대의 시간' '무정도시' '순정에 반하다' '미씽나인' '라이프 온 마스' '슬기로운 감빵생활' '슬기로운 의사생활' 영화 '롤러코스터' '올빼미'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해왔다. 2021년엔 '엔젤스 인 아메리카'로 연극에 첫 도전했다. 데뷔 초 유명 감독 정을영의 아들로 더 부각되기도 했지만, 그는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왔고, 스타가 아닌 배우로 자리매김 했다.
정경호는 현재의 시간들에 만족과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저는 엊그제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쉽게 말해서 '일타스캔들' 전으로 돌아가면 더 잘할 수 있냐고 하면, 그러고 싶지 않아요. 작품할 때 늘 최선을 다했고 후회를 하지 않으려 해요. 미련이 남겠지만 10년, 20년 전으로 돌아가도 '그걸 또 해야 한다고?' 싶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어요. 너무 감사하게 쉬지 않고 좋은 작품을 해왔고, 잘 버티고 있어서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아요."
40대가 된 지금, 배우로서의 고민도 커졌다고 했다. 부지런히 작품 활동을 해왔지만 '쉼표'도 생각하고 있다고.
"20대 때는 제 멋에 해왔던 것 같고, 전역하고 30대에 와서는 '내가 마냥 부진하면 이 일을 못하겠구나' 싶어 책임감 있게 연기를 해왔어요. 마흔이 되서는 기대가 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스스로도 변화가 있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이 들어요. 물론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또 하겠지만 지금 하고 있는 영화까지 끝나면, 쉼표를 박고 싶어요.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많고 단단해져있는 상태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야하지 않을까. 쉬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하다보면 제자리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쉼표'를 찍고 쉬는 시간이 생겼을 때 뭘하고 싶냐는 질문에는 "많이 먹고 운동을 하려고 한다. 지가 그래봤자겠지만"이라며 다시 유쾌하게 웃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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