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배우 전도연이 '리볼버'로 연기 장인 내공을 발산했다. 흥행 여부를 떠나, 무표정 속에서도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전도연 만의 힘이 가득한 '리볼버'다.
지난 7일 개봉된 '리볼버'(감독 오승욱)는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갔던 전직 경찰 수영(전도연 분)이 출소 후 오직 하나의 목적을 향해 직진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 '무뢰한'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며 연출력을 인정받은 오승욱 감독과 전도연이 재회한 작품으로 기대를 모았다.
전도연은 비리에 연루되어 감옥에 다녀온 전직 경찰 하수영 역을 맡아 지창욱, 임지연, 김준한, 정만식, 김종수, 이정재, 정재영, 전혜진 등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수영은 유흥 업소의 온갖 불법 행위를 눈감아준 경찰들의 비리를 혼자 뒤집어쓰는 대신 큰 보상을 받기로 했지만, 2년 후 약속받은 모든 것을 잃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먼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수영은 앞뒤 재지 않고, 더러운 것 가리지 않고 승냥이처럼 받아야 할 몫을 향해 달려간다.
전도연은 이런 고요하게 끓어오르는 분노와 목적을 위해 직진하는 수영의 독기를 무표정한 얼굴 위에 그려낸다. 이미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기력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은 전도연의 또 다른 얼굴과 매력을 볼 수 있는 ‘리볼버’다. 다음은 전도연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완성본을 보고 난 소감이 어떤가?
"''리볼버'가 이런 영화였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본을 볼 땐 블랙코미디 요소가 전혀 없었는데 웃으면서 봤다. 당황스럽기는 했다. '이런 영화였어?'라고 하는 그런 당혹스러움이었다. 배우들과도 "'리볼버'가 재미있는 영화였어?'라며 새롭게 본 것 같다. 찍을 때는 웃길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캐릭터 개성이 강하다 정도였다. 웃으면서 찍거나 웃음 코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다."
- 대본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나?
"상황들은 다 있었는데 제가 생각할 때 대본은 좀 더 어둡고 무거운 영화였다면, 영화의 블랙코미디를 만든 건 배우들의 힘인 것 같다. 지창욱, 정만식, 임지연 씨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 하수영 캐릭터를 만들어 갈 때 키워드, 중심을 잡은 건 무엇인가?
"중심 키워드는 약속이다. 이 인물을 만들 때는, 감독님과 '무뢰한'을 같이 했고 대본을 읽었을 때 여자 버전 '무뢰한'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다른 식의 접근을 했다. 무표정으로 감정적인 것을 걷어내면 어떨까, 연기 감정 표현을 많이 하는 걸 했다면 다 걷어내면 어떨까. 사람들이 저도 그렇고 '무뢰한'이 생각 안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방식의 접근을 했던 것 같다."
- 처음 전도연 배우가 작품을 하자고 제안을 했었고, 4년 만에 연락이 왔을 때 어땠나?
"사실은 안 하고 싶었다. 그때는 '길복순'을 하기 훨씬 전이었고 오승욱 감독님 만나던 자리에 변성현 감독님도 계셨다. 그 당시 감독님이 쓰고 있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잘 안 풀리다 보니 그사이에 경쾌하고 통쾌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감독님도 좋다고 했는데 4년이 걸렸다. 그사이 저는 '길복순'도 하고 '일타스캔들'도 찍었다. 그리고 저는 좀 밝은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일타스캔들'을 통해 시청률도 많이 나오고 전도연이 어려운 배우가 아니고 밝은 작품도 할 수 있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는 평을 얻었다. 그런데 '리볼버'를 하면 다시 돌아가야 하지 않나. '내가 어떻게 빠져나왔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굳이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안 하고 싶었지만 4년 전 약속이고 흔쾌히는 아니고 하게 됐다. '무뢰한' 생각이 많이 나서 내가 이걸 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이왕 하는 거 다른 방식으로 잘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 이런 생각을 당시 오승욱 감독에게 얘기한 적이 있나?
"감독님 앞에서 대놓고는 말 못 했다. 4년 동안 시간을 쓰셨지 않나. 그때 밥을 먹은 이후 저는 대본이 안 오길래 어쩌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고, 감독님이 잊어버리셨을 수도 있어서 그냥 지나가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길복순'과 '일타스캔들'을 연달아서 하면서 저도 쉬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바로 '리볼버'를 하게 되면서 감독님께는 말씀을 못 드렸다. 제작사 한재덕 대표님께는 "정윤선 하면 안 되냐"라는 얘기를 하긴 했다. 그런데 제가 정윤선을 하면 나이대가 더 올라가서 그렇게 갈 수는 없었다."
- '길복순' 때 액션이 힘들었다는 얘기를 했었지만 훌륭하게 해냈다. 이번 액션은 어땠나?
"'길복순'에서의 액션은 엄살이 아니라 진짜 못 했다. 그땐 긴장하고 걱정해서 좀 많이 경직돼 있었다. '길복순' 끝날 때쯤 몸이 상당히 풀렸다. 변성현 감독님도 지금 찍으면 더 잘 찍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하시더라. 그런데 '리볼버' 제목 때문에 액션 영화를 많이 기대하시는데 사실 그렇게 액션이 많지 않다. 액션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아서 허명행 무술 감독님께 여쭤보니 "'길복순'에서 그 정도 했으면 액션이 많지 않으니 현장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거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현장 가서 연습하면서 합을 맞췄다. '길복순'에서 워낙 연습을 많이 해서 몸이 기억하고 있더라. '이렇게 하면 못해도 잘해 보이는구나' 스킬 정도는 몸에 익은 것 같다."
- 하수영의 스타일링 변화도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표현하려 했나?
"과거에는 굉장히 화려한 느낌이다. 화려한 삶을 지향했다. 잘못된 사랑이긴 하지만 임석용(이정재 분)을 통해서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라는 삶의 목표가 명확했던 것이 과거의 하수영이다. 현재 하수영은 모든 게 바닥이고, '약속은 지켜라. 내 몫은 받아내겠다'라는 한가지 목표가 있는 인물이다. 점퍼와 위스키는 감독님 취향이라 대본에 명확하게 명시를 했다. 수영이 한 의상으로 가니까 어떻게 다채롭게 보일까 생각하다가 레이어드를 했다. 민소매나 블라우스 같은 거로 단조로움 속 변화를 줬다. 예전엔 외모도 굉장히 신경 쓰고 색채가 있었다면, 지금은 그렇지않기 때문에 한가지 스타일로 하되 묶었을 때와 풀었을 때 다양하게 보일 수 있게 헤어를 정했다."
- 하수영은 무표정이고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 연기를 할 때 어땠나?
"표정이나 감정을 걷어내고자 생각한 건 '무뢰한'을 감독님과 했었기 때문에 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고민했던 결과다. 촬영하는 동안에는 걱정했다. 제가 제 연기를 봐도, 표정 없이 계속 똑같은 얘기를 하니까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너무 지루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요?"라고 계속 얘기하고 걱정과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하수영이 인물을 만날 때마다 그 인물들의 색깔이 하수영에게 묻어나더라. 그 에너지가 표현되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하수영은 원하는 것이 명확하고 굉장히 단순한데 인물들을 만나면서 요동치고 변해간다. 그들의 에너지를 받으면서 뭔가 동요하고 흔들리고 했던 것 같다."
- 임지연 배우가 촬영할 때 전도연 배우가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이 하수영 그 자체라 본인도 캐릭터에 빠져들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전도연 배우는 그런 적이 없었다고 했다던데 사실인가?
"지연 배우가 말을 참 잘한다.(웃음) 같이 촬영할 때 저는 임지연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몰랐다. 그래서 임지연이 만든 정윤선이 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촬영 끝나고 나서 홍보 때문에 만나면서 그 친구가 이런 사람이구나 알게 된 것은 '핑계고'였다. 촬영할 때는 서로 작품이나 캐릭터 얘기보다는 '정윤선은 왜 하수영을 선택했고 하수영은 왜 정윤선을 선택했는가'를 얘기했다. '왜'가 해결되지 않고, 이 관계가 이해받지 못하면 이야기가 성립이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영화를 보는데 "딱 요만큼만 언니 편"이라고 하는데, 그 대사 전에 정윤선에게서 약간 울 것 같은 표정을 봤다. 하수영에 대한 진심이 느껴져서 "충분히 둘의 관계가 보여지는 것 같다. 너무 좋다"는 얘기를 했다."
- 꽁치 안주로 소주를 마시는 엔딩은 마음에 드나?
"제가 기억하기로는 '소주에 꽁치 한점'이라는 이미지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됐다. 원하는 걸 얻으면 뭔가 될 것 같았지만, 사실 얻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의미도 없다. 인생이 달라질 게 없다. 이런 씁쓸함이다. 그 엔딩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열린 결말이라고 하는데, 정윤선이 하수영을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저는 엔딩을 보며 정윤선과 하수영을 좀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전혜진 배우와 붙는 신도 강렬하게 자기 색깔이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삭제가 된 신인데, 영화를 보면 7억 못 줄 사람들이 아닌데 왜 저걸 안 줘서 그러나 싶지 않나. 감독님이 보여주고자 하는 건 지질한 궁상이긴 하지만, 오미트 된 신이 있었다. 그레이스(전혜진 분)가 "7억 내가 줄게. 데려와"라고 한다. 그래서 그레이스와 하수영이 만난다. 그런데 그레이스가 하수영을 보자마자 "대단한 앤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니네" 한다. 그리고 주기 싫다고 한다. 단순한 변심으로 안 준거다. 저는 그 신을 좋아한다. 7억이 없거나 큰돈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자기들 마음인 거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 장면이 있었으면 7억에 대한 의문이 좀 해소되지 않았을까 싶어서 아쉬움이 든다."
- 정재영 배우가 짧지만 중요한 역할로 특별출연했는데 어땠나?
"정재영 오빠는 너무 오랜만에 봤는데,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배우다. 좀 많은 작품을 하길 바랐는데 어느 순간 은둔형 인간이 되어 사람도 잘 안 만나고 나타나지도 않더라. 그래서 이렇게 현장에 있는 게 좋더라. 굉장히 든든했다. 약간 친오빠 같은 느낌이 있다. 한 화면에 있는데 좋고, 이번엔 좀 짧아서 아쉬운데 기회가 되면 또 같이 작품 하고 싶다."
- 영화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거나 좋았던 장면을 꼽는다면?
"저는 산길 신도 좋고 절에서 그레이스를 만났을 때도 좋았다. 이번에 처음 연기를 같이해본 배우들이 많았다. 전혜진 배우도 사석에서는 만났지만 작품은 처음이다. 그래서 그레이스와 둘이 만나는 신을 기대했다. 촬영하면서도 좀 신기했다. 전혜진 배우가 앞에서 연기하는데 보는 즐거움이 많았다."
- 지창욱 배우와 같이 호흡한 소감도 궁금하다.
"창욱 배우는 제가 '저 배우와 무언가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1도 하지 않았다. 오고 가면서도 본 적이 없다. 그냥 잘생긴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작품하고 나서 깜짝 놀랐다. 연기를 너무 잘한다. 앤디 역할을 하면서 창욱 배우가 준 소름 끼치는 에너지는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찢고 나왔다는 말을 많은 분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임지연 배우가 '한예종 전도연'이라고 하니 바로 '단국대 전도연'이라고 하더라.
"그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더라. 깜짝 놀랐다. 저는 몰랐는데 말이 엄청 많다더라. 저랑 있을 때는 말수가 너무 없으셔서 "원래 말이 없나"라고 했더니 "네"라고 하더라. 그래서 저는 과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되게 엉뚱하고 말도 많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 홍보하면서 다 같이 만나 이야기할 시간들이 있는데, 창욱 배우가 좀 실없는 사람이라고 알게 됐다."
- 지창욱 배우가 '유퀴즈'에서 이 얘기를 했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네"라고 잘못 답했다고 하더라.
"긴장한 것 같지 않았는데.(웃음) 저도 '유퀴즈' 보긴 했었는데 그땐 진짜 진심 같았다."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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