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꿈의 제인'(감독 조현훈)을 본 관객들에게, 트랜스젠더 여인 제인(구교환 분)의 모습은 오래도록 잔상을 남길 법하다. 예민해보일만큼 마른 몸에 나른한 눈빛을 한 제인은 자신처럼 외로운 사람들에게 아낌 없이 마음을 나눠준다. 이 따뜻한 여성은 가출 소녀 소현(이민지 분)의 유일한 꿈이자 희망이 된다.
지난 15일 폐막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 초청작 '꿈의 제인'은 무려 3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최고의 화제작임을 입증했다. CGV아트하우스상과 올해의 배우상 남녀 부문을 독식하며 영화계에 또렷한 존재감을 남겼다.
소현 역 이민지와 제인 역 구교환은 지난 2014년 '들꽃' 조수향과 '거인' 최우식, 2015년 '소통과 거짓말' 장선과 '혼자' 이주원에 이어 올해의 배우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올해 배우 조민수와 김의성이 각각 심사를 맡은 부문이다. 3회 째를 맞은 배우상 시상 부문에서 한 작품의 남녀 배우가 상을 모두 차지한 것은 처음이다.
김의성은 극 중 트랜스젠더 제인 역을 탁월하게 소화한 구교환에 대해 "미스테리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트랜스젠더 제인 역을 황홀하게 연기해 주었고, 말하는 것보다 듣고 생각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느끼게 해 줬다"고 평했다. 이어 "물론 상업적 필드에서 더욱 기대가 되는 젊은 배우들이 있었지만, 출품작 안에서의 퍼포먼스를 놓고 본다면 이 배우의 연기가 저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움직였다"고 밝혔다.
사실 구교환은 독립영화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관객들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영화인이다. 단편과 장편을 넘나들며 빼어난 연기와 연출 능력을 자랑해왔다. 영화 '오늘영화'의 연출과 주연을 맡았고, 단편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에서도 연출과 연기를 겸해 미쟝센단편영화제의 '희극지왕'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같은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조성희 감독의 단편 '남매의 집'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연출이 아닌 연기 부문에서 트로피를 안은 것이 처음이라는 구교환을 지난 15일 영화제 폐막식을 앞두고 부산 해운대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만났다. 그는 "상을 '덜컥' 받았다는 마음보단 '울컥' 하는 마음이 든다"며 "이 상은 내가 아닌 제인으로서 받은 상"이라고 기쁨을 드러냈다.
제목은 '꿈의 제인'이지만 영화를 이끄는 인물이 소녀 소현인 만큼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것이 구교환의 이야기다. 특히 여자 부문 수상자가 같은 영화에 출연한 이민지라는 이야길 들었을 때, 그리고 영화제 중 우연히 만난 심사위원 조민수가 격려를 전하면서도 "포기하고 있으라"고 말해줬을 때 수상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었다고도 고백했다.
자신의 수상을 기뻐하는 한편 '꿈의 제인'을 빛낸 동료 배우들을 향한 관심도 당부했다. 구교환은 "이 영화에 나오는 다른 배우들에게 주목해주길 바란다"며 "지금 워낙 핫한 배우가 된 이주영(지수 역)을 비롯해 이석형(병욱 역), 박강섭(대포 역), 박경혜(라경 역) 등이 너무 훌륭한 연기를 해 줬고 이들에 대한 피드백이 모아져서 내가 묻어갈 수 있었다"고 겸손한 소감을 내놨다.
이날 인터뷰에 구교환은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자주 쓰는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상의로는 면 티셔츠 위에 데님 셔츠를 걸쳤다. 레드카펫을 걷고 무대에 올라 수상도 할 예정이니 혹여 다른 옷을 준비했는지 물었더니 "이 위에 감독의 재킷을 빌려 입고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의상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혹시 청바지를 입고 올라가면 안 되는 건가"라며 눈을 크게 뜨고 되물어 웃음을 줬다. 의상 제한은 없다는 말에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했다. 엉뚱하면서도 꾸밈 없는 배우 겸 감독 구교환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미소가 지어졌다.
이날 구교환은 예고한대로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레드카펫을 걸었다. 꼭 그다워서 멋진 순간이었다.
이하 '꿈의 제인'으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구교환과의 일문일답
-극 중 제인 역을 위해 많은 체중을 감량했다고 들었다.
"몇 킬로그램을 뺐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제인이 섭식을 잘 못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미리 감량한 뒤에도 유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제인의 상태에 어울리게 있었다."
-조현훈 감독은 배우 구교환이 제인 역에 보여준 애정에 놀랐다고 했는데, 출연을 결심한 이유도 궁금하다.
"제인이 궁금했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제인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물이 너무 매력적이지 않나. 이 영화의 전력에 보탬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제인에 대한 궁금증도 컸다. 읽고 바로 연락했다. 물론 연기를 잘 해내지 못할까봐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이 상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남자 부문 심사위원 김의성은 제인 역의 배우가 실제 트랜스젠더인 줄 알았다고도 했는데.
"너무 감사한 칭찬이다. 최고의 기분이다. 물론 나라는 사람을 알아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진한 분장부터 의상과 하이힐까지, 과감한 도전이었을 법하다.
"구두가 의외로 잘 맞더라.(웃음) 아프긴 진짜 아팠다. 그래서 못 걸을 줄 알았는데 걸어지더라. 구두를 미리 사서 신고다니기도 했다. 분장은 어차피 과정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것이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분장을 덕지덕지 했다거나, 어떤 괴수 역을 맡은 것이 아니지 않나. 분장 선생님의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웃음) 한 순간도 가짜 같은 순간이 없길 바랐다. 그래서 굉장히 두려운 점들이 많았다. 관객이 이것을 가짜라고 믿는 순간 영화 자체가 흔들릴 수 있지 않나."
-제인을 어떤 사람이라고 이해했는지 궁금하다.
"규정하지 않았었다.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지 않고 신들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이 배역 자체가 '이 사람은 어떤 여인이다'라고 잡고 들어가기엔 어려운 역할 아닌가. 그래서 그랬다. 규칙 같은 것이 없었던 셈이다. 어떤 장치에 의존하기보단 여성 분들을 많이 관찰했다. 좋아하는 여배우들 영화도 많이 봤고 길거리에 계신 여성분들도 많이 봤다."
-배우 뿐 아니라 감독으로도 활약 중인데, 이번 영화를 본 관계자들은 '구교환이 연기를 더 많이 하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더라.
"지금 준비하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다음 영화는 제가 연출을 하는 작품이 된다면 좋겠다. 이옥섭 감독과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연기 활동도 하고 있는데, 현재는 KBS 2TV 드라마 스페셜 '아득히 먼 춤'을 찍고 있다. 배우와 감독 활동을 병행하는 것에 대해 계획표 같은 건 없다. 그저 지금 중요한 것들을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가장 중요한 것은 새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것이다. 연기와 연출, 둘 모두에게 강한 욕구가 있다. 뭐 하나가 좋다고 규정하기엔 조금 이상하다. 연기를 할 것인지, 연출을 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주시는 것만도 감사하다. 둘 다 잘 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으니까. 부담스럽지만 정말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올해의 배우상 남녀 부문을 한 작품의 배우들이 모두 독식하는 것은 처음이다. '꿈의 제인' 뿐 아니라 단편 '뎀프시롤:참회록'에서도 함께 작업한 이민지와 공동으로 수상해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진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웃음) 이민지는 워낙에 뛰어난 배우다. 영화를 보면서도 너무 좋았다. 사실 편집본을 보지 못해 이 영화를 부산에서 처음 봤다. 이민지에 대해선 워낙 내가 팬이기도 했고, 극 중 제인과 소현처럼 계속 함께 있었던 것 같다. 극 중 두 사람의 사이엔 안 그런 것 같아도 연대가 있지 않나. 촬영장에서도 그랬다."
-잠시 후 폐막식에서 입을 옷도 따로 준비했나.
"지금 입은 티셔츠에 감독이 입던 재킷을 내가 입고 올라가려 한다. (데님 셔츠를 들춰올려 티셔츠를 보여주며) 이 위에 재킷을 입으면 이상할까? 천천히 생각해보겠다.(웃음)"
-상금 500만원의 사용 계획도 궁금하다.
"내 매니지먼트가 부모님이다.(웃음) 우선 대표님 두 분께 띄워드려야 할 것 같다."
-앞으로의 포부도 한 마디 들려달라.
"'저만큼 올라가겠습니다'가 아니라, 그저 반가운 인물을 만나게 된다면 좋겠다. 그런 역할에 나를 선택해주신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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