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룡은 2004년 꿈에 그리던 프로에 입단했다. K리그 전통의 '명가' 포항 스틸러스 유니폼을 입었다.
현실은 냉혹했다. 당시 포항의 주전 골키퍼는 '전설' 김병지였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에게 출전기회가 돌아올 리 만무했다. 좀처럼 바뀌지 않는 포지션이 골키퍼이기에 정성룡이 설 자리는 없었다. 게다가 잦은 부상에 시달려야만 했다.
정성룡은 "프로 1년, 2년차에는 1군 출전기회가 없었다. 김병지라는 베테랑 골키퍼가 있어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올림픽 대표팀에 나갔다가 어깨를 다쳐 수술해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2군에서 3년을 보냈다. 너무나 힘들었던 시기다"라며 힘들었던 과거를 꺼내들었다.
꿈꾸던 프로에 와서 경기에는 나서지 못하고, 베테랑 골키퍼의 실력에도 미치지 못했던 정성룡. 자신이 프로에서 살아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답답함과 좌절감이 전부였다. 너무나 힘들었던 정성룡은 군대에 갈 생각을 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 군대에 가서 잠시 냉혹한 현실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성룡은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2군에 머물면서 너무 힘들었다. 이 일을 3년이나 했다. 그 때 군대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의 힘든 상황을 생생히 전했다.
하지만 정성룡은 군대에 가지 않았다. 당시 포항의 박태하 코치와 김성수 골키퍼 코치가 군대에 가지 말라고 만류했기 때문이다. 박태하 코치는 당시 "군대에 가지 말고 경기에 뛸 준비를 해라. 그러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다. 그 때 기회를 꼭 붙잡아라"며 정성룡을 다독였다.
정성룡의 입대를 막았던 또 다른 이유. 바로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었다. 정성룡은 "고 1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프로에 가는 것, 대표팀이 되는 것, 반드시 이뤄서 아버지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2군에 있으면서도 이런 마음가짐은 놓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아버지 생각으로 잘 버텨냈다"고 말했다.
아버지에 그리움과 당당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을 가슴에 담고 기회를 기다렸던 정성룡. 박태하 코치의 말대로 정성룡에게 기회는 찾아왔다. 2005년을 끝으로 김병지가 FC서울로 이적했고 2006년 정성룡은 포항의 골문을 지키게 됐다. 그리고 2007년. K리그를 수놓았던 '파리아스 매직'의 중심에 정성룡은 서 있었다. 정성룡은 K리그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K리그 정상급 골키퍼로 인정받은 정성룡은 2008년 성남 일화로 이적한다. 정성룡은 "포항에서 우승하고 많이 배웠다. 우승을 해봤으니 앞으로 한 단 계 더 발전해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성남을 택했다"며 K리그 최고 명문 성남의 노란 유니폼을 입었다.
바로 그 해 한국 대표팀에는 허정무호가 출범했다. 2008년 1월 30일 칠레와의 평가전. 허정무 감독의 데뷔전이자 정성룡의 A매치 데뷔전이었다. 후반 김병지와 교체 투입된 정성룡. '국가대표' 정성룡의 첫 페이지가 시작된 것이다.
<③편에 계속...>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사진 최규한기자 dreamerz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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