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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자화장 <6> - 정찬주


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두 번째 작품 「자화장」을 선보입니다. 작품은 수행자들이 용맹정진하는 절집이 배경이지만, 종교와 무관하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자아의 본질을 되새기게 하는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편집자]

우멸은 암자에 발전기를 들여놓은 것을 후회했다. 발전기가 없었다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하는 법공의 다비식을 보지 않았을 터였다. 뿐만 아니라 은사 법성에게 '못난 놈!'이란 소리도 듣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못난 놈!'은 화두처럼 우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못난 놈이라고 생각하는 놈은 누구인가?'

'못난 놈!'은 의심덩어리 즉 의단(疑團)이 돼버렸다. '못난 놈!'은 꿈속에서도 나타나 우멸을 꼼짝 못하게 했다. 이른바 몽중일여(夢中一如) 경계가 오락가락했다. 어느 새 '못난 놈!'은 법성이 우멸에게 주었던 화두 '이 뭣고?'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싸락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우멸은 낙엽 무더기에 떨어지는 싸락눈을 보면서 또 '못난 놈!'이란 어쩔 수 없는 의심에 붙들렸다. 문득 은산철벽 앞에 선 듯 절망에 사로잡혔다. 절망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갔다. 뒹구는 낙엽이든 모래알 같은 싸락눈이든 모두가 허망했다. 우멸은 자신도 허망한 그것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실상인지 허상인지 헷갈렸다. 법성을 시봉하면서 무엇을 공부했는지 알 수 없었다. 새삼 비로암 생활에 회의가 솟구쳤다. 우멸은 활로가 없는 미궁에 빠져버린 듯했다.

'이름값도 못하고 사는 놈이 바로 나였구나.'

우멸은 문득 비로암을 떠나기로 작심했다. 진주 포교당으로 갔다가 때를 보아 선방으로 갈 생각을 했다. 진주 포교당에는 사제 우명이 있었는데, 그는 비로암에 올라올 때마다 고소공포증을 호소한 데다 은사 법성을 까닭 없이 어려워했다. 은사 법성을 잘 시봉하려고 노력했지만 기름과 물처럼 겉돌았던 것이다. 작심하자 하룻밤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마침내 우멸은 자정 무렵에 걸망을 멨다. 법계사까지 단숨에 내려와 법당으로 들어가 잠시 쉬었다. 법계사 대중들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컴컴한 하늘에 별이 몇 개 또록또록 빛났다. 꼭두새벽이 되자 산길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싸락눈이 쌓여 희부옇게 열린 산길이었다.

법계사에서 '경상남도 환경교육원'까지는 평소에 1시간 30분 정도였는데, 밤길이었으므로 2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다행이 먼동이 터 동녘하늘부터 밝아지고 있었다. 우멸은 주차장 한쪽 구석에 있는 승용차를 놓아두고 중산리까지 걸어갔다. 함박눈이라도 느닷없이 퍼붓는 날이 되면 승용차는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지리산 산길은 사륜구동 짚이 아니면 다닐 수 없었다. 중산리에서 첫 버스를 탄 우멸은 슬그머니 법성을 떠올렸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공양은 '쿠쿠보살'이 해결해 줄 터였다. 법성은 전기밥솥을 '쿠쿠보살'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진주 포교당에 도착하자, 우명이 맞아주었다. 우명은 사시예불을 막 끝낸 듯 가사장삼을 수하고 있었다. 신도 몇 사람이 우멸에게 합장하면서 지나쳤다.

"사형님, 무슨 일이십니까?"

"선방에서 살려고 내려왔네."

"더 추워지기 전에 틈을 내서 비로암에 올라가려고 하던 중이었습니다."

"은사님께서 부르시던가?"

"아니요. 은사님하고 사형님 누비승복을 마련해 놨거든요."

우멸은 우명의 방으로 따라 들어간 뒤 맞절을 했다. 우명의 말투에는 십여 년 동안 법성을 시봉해온 우멸에게 미안함이 스미어 있었다.

"사형님, 고생이 많으시죠?"

"지나간 과거보다는 지금이 중요하지 뭐."

"선방 가시기 전까지는 포교당에서 편하게 계세요."

"우명스님이 허락해주니 고맙긴 한데 나도 어찌될지 잘 모르겠네."

우명은 은사 법성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우멸이 보기에 신도들에게는 헌신적이고 친절한 것 같았다. 절이 많은 진주에서 포교당을 수년째 잘 운영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도들이 줄기는커녕 늘어나 내년 봄에는 더 넓은 평수로 이사할 모양이었다.

"신도회장이 더 넓은 곳으로 이사 가자고 성화입니다."

"우명스님이 포교당을 잘 하고 있다는 증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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