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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그림자와 칼 <2> - 정찬주


조이뉴스24가 소설을 연재합니다. 작가의 단편소설을 매일 오전 업로드합니다. 독자님들께서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단편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처음 소개하는 작품은 정찬주 작가의 '그림자와 칼'입니다. 소설은 어느 날 사람들의 그림자가 사라진다는 충격적인 상상으로부터 시작됩니다.[편집자]

'목적지는 무우산, 출발은 초저녁, 차편은 고속버스나 택시, 일정은 보름 또는 그녀와 함께 결정'

문제는 선선히 응해야 할 그녀의 결심에 달려 있을 뿐, 남무는 사실 최선을 다했다. 혼신의 힘을 다 쏟고 있음으로 결국 그녀는 동조하리라고 남무는 믿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무의 행동은 무모한 것일 수 있었다.

남무는 아직 그녀의 이름마저 모르고 있는 형편이었다. 물으려고 했지만 자신의 질문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어 버렸었다. 지금 남무가 믿고 있는 건 그녀를 또 한 번 만났던 날 그녀의 눈빛일 뿐이었다. 그날 그녀의 눈은 '서두르지 마세요. 당신의 요구가 옳다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어요.'라는 말을 분명하게 담고 있었다.

남무는 두 달 전쯤 그녀를 미행했었다. 그녀를 미행했다기보다는 그녀의 그림자를 뒤따라갔다는 고백이 더 옳을 것이었다. 그녀는 소매 없는 흰 상의에다, 풍만한 하체를 꽉 죄는 듯한 색이 바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남무에게 그러한 외모는 별 호소력이 없었다.

남무는 그녀의 그림자를 보고서 황홀해 하였다. 그래서 남무는 거의 반나절이나 그녀 뒤를 밟았었다. 그녀가 버스를 타면 남무도 버스를 올라탔고, 그녀가 육교를 오르면 남무도 다급하게 육교를 올라갔고, 그녀가 멍한 시선으로 강물을 바라보면 남무도 또한 무심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봤던 것이다. 그녀의 그림자처럼.

그녀가 걸음을 멈춘 곳은 '용궁'이란 한글이 검정색 페인트로 그곳 정문 간판에 쓰인 낡은 연립주택이었다. 그녀는 남무의 미행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녀는 멈칫거리기만 하고 있었다. 어색한 동작으로 두리번거렸다. 자신의 거처를 알려주지 않고 그쯤에서 남무를 따돌리려 하고 있었다.

그때, 남무는 너무 바짝 다가가 그녀의 그림자를 슬쩍 밟고 말았다. 그림자도 밟히면 아픈 것일까. 어떤 통증이 그녀의 몸으로 건너간 듯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녀의 음성은 졸린 사람의 목소리처럼 작았다.

"전 피곤해요."

"…"

"돌아가주시는 게 좋겠어요."

"…"

"혹시, 사람 잘못 보신 게 아녜요?"

돌아가라니, 그건 말도 안 돼. 남무는 크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허둥거리기만 하였다. 그녀가 노려보고 있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래도 가슴이 떨리고 입술이 달싹거렸다. 남무는 한참 만에야 용기를 내었다.

"전 아무런 욕심이 없습니다. 그림자가 그리울 뿐입니다."

"무슨 뜻이죠?"

"잠깐만 시간을 내주십시오."

그녀는 주춤주춤 망설이다가 남무의 간절한 얼굴 모습을 보더니 허락했다. 긴 생머리를 쓸어넘기면서 그 손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등받이가 뜯겨져 나간 벤치를 가리켰다. 남무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녀 겨드랑이 속살에 돋아난 까마귀 빛깔의 건강한 털들이 아름다운 소리를 낼 듯싶었다. 거기에 날카로운 면도날을 대지 않는 그 점만으로도 그녀에겐 그림자를 달 자격이 있었다. 여자들은 왜 그 아름다운 빛깔을 부끄러워하는 걸까.

등 쪽으로부터 아카시아꽃 향기가 가만가만 바람에 실려 왔다. 아주 미미한 향기였지만 남무는 그녀의 화장냄새와 구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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