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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 <5> - 정찬주


조이뉴스24가 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단편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네 번째 작품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를 선보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호흡이 긴 중편소설입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정찬주 작가가 쓴 「작가메모」로 갈음합니다. [편집자]

오후 늦게 강헌은 할 수 없이 운곡이 기거하고 있는 요사로 숙소를 옮겼다. 주지스님이 운곡을 직접 민박집으로 보내 강헌의 짐을 싸게 했던 것이다.

강헌은 요사의 끝방에 누워 엎치락뒤치락했다. 대웅전을 가보고, 탑을 돌아보고, 돌부처님을 만나보고 싶었는데 막상 절에 오자 그런 행위에도 그에게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오전 산책길 때도 그냥 운곡을 만나고는 민박집으로 내려가 버렸던 것이다. 어머니의 흔적이나마 보려고 하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지난 여름철 돌부리에 차인 엄지발톱의 통증이 심해져서였다.

출판사만을 위해 일하다가 평생 처음 아내와 딸의 성화에 못 이겨 지리산 뱀사골로 피서라고 갔는데, 그만 계곡에서 발을 헛디뎌 오른발 엄지발톱이 빠져버렸던 것이다.

새 발톱이 나오고는 있지만 살을 후비며 자라는 탓에 어디에 부딪칠 때마다 고문당하는 것 같고, 걸을 때는 엄지가 힘을 받지 못하니 다리를 절룩거릴 수밖에 없었다.

강헌은 오른발 엄지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보고는 힘없이 웃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꼭 다친 오른발이 자신의 인생과 다름없다. 강헌이 젖먹이 때 일찍 출가한 아버지나 돌아가신 어머니의 존재가 자신에게 힘을 주지 못한 다친 엄지발가락과 같은 것이다.

나는 네 개의 발가락만으로 힘들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엄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고통만을 주었을 뿐 나에게는 힘이 되어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부모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여느 부모와 같이 태어날 때는 내게 건강한 발가락 다섯 개를 주었고, 법성선사는 선객답게 '저의 엄지발가락은 왜 이 모양입니까?'하고 물으면 '누가 너의 발가락을 다치게 했느냐'고 일갈을 할 테니까.

밖에서는 지금 사진작가인 여자와 운곡이 떠드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오고 있다. 사진의 피사체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는데, 강헌의 귀에도 들리는 것이다.

"어머나, 이 계곡에 핀 붉은 꽃들 좀 봐요. 무슨 꽃이죠?"

"우리들은 절에서 물봉숭아꽃이라고 부르지요."

"물봉숭아꽃? 이런 꽃은 처음 봐요."

그런가 하면 주지스님의 얘기도 화젯거리이다.

"주지스님은 절을 자주 비우시나봐요."

"법문을 자주 다니시니까요."

"그럼, 절 살림은 누가 하구요."

"이런 깊은 산 속에 신도가 어디 있습니까. 법문을 하러 다니시는 것도 절 살림하고 무관하지 않답니다. 좀 전에 부산으로 떠나셨으니까 내일 오후에나 돌아오실 겁니다."

운곡의 말대로라면 김룡사는 신도의 시주에 의해 운영되는 절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광스님이 큰 사찰이나 포교당에서 법문을 하고 난 뒤, 받는 사례비로 운영되는 절인 것이다.

신도가 많은 부찰富刹도 아니고, 소위 관광 사찰도 아닌데도 무슨 흡인력이 있어 이런 깊은 곳에 스님들이 머물고 있을까. 출판사를 경영해온 강헌의 계산법으로는 엇비슷한 정답도 안 나온다.

'이곳의 문법으로는 내 계산법이 틀릴지도 모르지.'

강헌은 책상 위에 둔 시집을 가져다가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았다. 그러자 시집 중간쯤에서 이런 쓸쓸한 시가 눈에 들어온다.

내 오십 사발의 물 사발에

날이 갈수록 균열이 심하다

쩍쩍 줄금이 난 데를 불안한 듯

가느다란 실핏줄이 종횡무진 짜고 있다

아직 물 한 방울 새지 않는다

물 사발의 균열이 모질게도 아름답다

출판사에서 수십 종의 책을 펴내긴 했지만 시 한 편을 눈으로 깊이 읽어보기는 처음이다. 시인은 자신을 균열이 심한 물 사발로 비유를 하면서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위로하고 있다.

그러나 강헌은 시인의 모습이 불안하기만 하여 측은하다. 실핏줄처럼 금이 나 불안한데도, 아직 물 한 방울 새지 않으므로 아름답다고 위로하고 있으니 슬픈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시인에 비하면 강헌은 지금 불안할 것도, 아름다울 것도 없는 처지였다. 물 사발이 균열을 견디다 못해 깨어져버린 형국이니까. 그러니 슬퍼할 것도 없는 처지이다. 꿈에서 깼을 때처럼 무無로 돌아와 있는 상태니까 차라리 허망할 뿐이었다.

강헌은 시집을 덮고 다시 누워 엄지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보았다. 이제 발톱이 생살을 쑤시는 통증은 가신 것 같다. 다시 발톱 쪽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걷는 데는 지장이 없으리라. 발가락 다섯 개를 온전히 쓴다는 것도 조촐한 기쁨이고 고마움이다.

작가메모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는 십여 년 전에 썼던 작품이다. 어느 해 가을날 김룡사를 다녀온 뒤 그 절의 풍경이 너무 쓸쓸해서 그런 적막한 분위기를 화폭에 담듯이 그려본 작품이다. 지나친 슬픔이나 기쁨은 목을 메이게 한다. 그런데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쓸쓸함도 목을 메이게 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그런 적막 속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데 그곳에 갇힌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잘 견디고 있었다. 식사하는 여러 스님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에게 이 작품을 딱 한 번 보여준 기억이 난다. 한 선생은 그때 '자네도 이제 소설 귀신이 됐구먼.'하고 웃으셨던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을 일기 쓰듯 썼기 때문에 완성도나 작품성 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작 내가 쓰고 싶은 작품은 사사로운 경험적(불교적) 소재를 차용한다 해도 문학적 보편성을 담아내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사숙한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나 이오누에 야스시의 「후다라쿠 항해기」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작가로서 도달해 보고 싶은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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