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기자] 지겹다. 이란만 만나면 항상 우려먹는 그 말이 또 나왔다. ' 6-2 참사.'
이란이 항상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그 한국축구의 참사는 1996년 12월16일 UAE 두바이에서 일어났다. 이란은 아시안컵 8강전에서 한국을 만나 알리 다에이가 4골을 터뜨리는 활약에 힘입어 6-2 대승을 거뒀다.
아시아의 강호 한국에 대승을 거뒀으니 이란 축구사에 역사적인 날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한국만 만나면 그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억지로라도 생각해내야 했다. 그 경기를 제외하고 한국에 단 한 번도 대승을 거둔 적이 없으니 그 때의 기억이 더욱 짜릿하고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식스 투'는 이란이 한국을 자극하는 단골 메뉴가 됐다. 이란의 선수들, 미디어, 축구팬 모두 한국만 만나면 6-2 승리를 강조하며 도발한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그 때의 일이 재현되기를 바라고 있다.
오는 18일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차전 한국과 이란의 경기를 앞두고 역시나, 또, 언제나 그랬듯이 다시 '6-2 발언'이 나왔다.
경기를 앞두고 울산에서 훈련 중인 이란의 안드라닉 테이무리안은 16일 한국 취재진을 향해 "우리는 한국을 6-2로 이긴 적이 있다"며 지겹도록 들었던 얘기를 다시 한 번 들먹였다. 예상했던 말이었던 만큼 이제는 별다른 느낌도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란 선수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 것 같다. 1996년 6-2 대승이 한국과 이란이 만난 경기 중 가장 큰 점수차가 난 경기라는 착각이다. 4골 차보다 더 큰 점수차가 난 경기가 한 경기 있다.
1996년 대승 이전의 경기를 기억을 하지 못하는 건지, 알지만 창피해서 말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란 축구사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인지, 승리한 역사만 공부를 한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란 선수들은 한국과 이란의 '첫 대결'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1996년 6-2 경기가 참사였다면 1958년 첫 경기는 '대참사'였다.
1958년 5월28일. 한국과 이란은 역사적인 첫 대결을 펼쳤다. 동아시아의 '강호' 한국과 중동의 '중심' 이란의 첫 만남. 무대는 아시안게임이었다. 장소는 일본의 도쿄. 이곳에서 역사적인 '대참사'가 일어났다.
한국은 이수남, 김영진, 문정식, 최정민, 우상권이 '5골 폭죽'을 터뜨렸다. 그리고 무실점으로 이란을 침묵시켰다. 한국의 5-0 대승. 이란의 0-5 대패였다. 그야말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프로와 아마의 대결이었다. 바로 이 경기가 한국과 이란이 만난 역대 경기 중 가장 많은 골 차가 난 경기다. 이 경기 후 5골차의 경기는 한국-이란 축구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다.
한국의 대승은 또 있다. 이란은 6-2 승리가 유일한 대승이지만 한국은 3골 차 이상 승리가 2경기 더 있다. 1988년 12월11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한국은 변병주의 2골에 황선홍의 1골을 더해 이란을 3-0으로 완파했다. 그리고 1993년 10월16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 미국월드컵 예선에서는 박정배, 하석주, 고정운의 릴레이 골로 다시 한 번 3-0 완승을 거뒀다.
참사로 따지면 이란이 한국보다 더 많은 참사를 겪었다. 그런데 한국은 이란에 크게 이긴 경기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과거 전적에 굳이 연연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더 큰 이유는 한국이 이란에 대승을 거둔 것이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다.
한국이 이란에 대승을 거두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란 입장에서는 한국에 한 번 대승을 거둔 것이 특별하고 감격스러운 일이기에 반드시 기억하고 되새기며 알려야 하는 일이겠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그냥 많은 대승 중에 한 경기 정도로 치부한다. 이란과의 첫 만남 때부터 그랬다. 이란전 승리는 단지 승리일 뿐, 다른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한국이 이란에 여러 번 수모를 안긴 것은 그냥 그런 승리지만, 이란이 6-2 대승을 너무도 많이 우려먹기에 역대 전적을 짚어본 것이다. 그렇게 이란이 과거 전적 들먹이는 것을 좋아한다니 한국과 만나 1958년 0-5 '대참사', 1988년 0-3 '쇼크', 1994년 0-3 '완패'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이 3경기 역시 이란 축구사에서 반드시 기억돼야 할 역사다.
항상 불안한 쪽, 자신이 없는 쪽이 과거를 들먹인다. '예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느냐', '내가 예전에 얼마나 잘 나갔는데', '그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가' 등 현재에 불안을 느끼는 이들은 과거에 집착하게 마련이다. 과거의 6-2 대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란. 불안한가 보다. 자신이 없는가 보다. 뭐 그럴 것이다.
조이뉴스24 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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