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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송구홍 단장① "야구와 LG는 내 운명"


'선수·코치·프런트' 20년 이상 LG맨…"과거 영광 재현 목표"

[조이뉴스24 정명의기자] 송구홍(49) 단장은 LG 트윈스에서만 무려 24년을 보냈다. 1991년 데뷔해 선수로 10년 간 유니폼을 입었고, 2002년을 끝으로 은퇴한 뒤에는 2003년부터 또 10년 동안 코치 생활을 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은 운영팀장과 운영총괄을 역임한 프런트였다.

선수 시절 트레이드를 통해 해태 타이거즈(1998년), 쌍방울 레이더스(1999년)에 잠깐 몸담기도 했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다. 프로야구에 발을 담근 이후 2년을 제외하면 오로지 LG 트윈스와 함께했던 인물이 바로 송구홍 단장이다.

그만큼 송 단장은 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지난해 12월 단장으로 선임된 것도 'LG맨'으로서 뚜렷한 정체성이 큰 영향을 미쳤다. 구단의 과거와 현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 미래에 대한 그림 또한 송 단장의 머릿속에 담겨 있었다.

◆주사위로 이루어진 꿈, 공부가 된 트레이드

송 단장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LG 입단이 꿈이었다. 그 꿈은 주사위 굴리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1990년 열린 신인 드래프트. 당시 같은 서울을 연고로 하고 있던 LG와 OB 베어스(두산 전신)는 주사위 굴리기를 통해 1차지명의 순서를 정했는데, LG가 우선권을 얻었다.

"왜 그랬는지 몰라도, 고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MBC 청룡에서 뛰고 싶었다. 주사위 굴리기를 해서 LG 유니폼을 입게 됐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LG에서 뛰면서 정말 즐겁게 야구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트레이드가 됐으니 얼마나 실망을 했겠나."

스스로의 말처럼 그는 1997시즌을 마친 뒤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됐다. 1992년 LG 최초로 20홈런-20도루를 기록하며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했지만, 점차 팀 내 입지가 좁아졌던 탓이다. 그래도 송 단장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고 겸허히 트레이드를 받아들였다.

"실망은 많이 했지만 당시 멘토들이 좋은 마음으로 갔다오라는 말을 많이 해주셨다. 그래서 공부를 하고 온다는 생각으로 팀을 옮겼다. 새로운 팀에서는 해태가 왜 강한지, 쌍방울은 열악한 가운데 어떻게 LG를 많이 이길 수 있었는지를 배웠다."

짧았던 LG에서의 전성기 시절. 송 단장은 '로보캅'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로 얻게 된 별명. 아직도 LG 팬들은 현역 시절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던 송 단장을 기억하고 있다.

"사실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각진 얼굴에 수비할 때 유연성도 별로 없는 것이 로보캅과 비슷하다고 언론에서 붙여준 별명이다. 허슬러, 스마일맨이라는 별명도 있었는데 다 마음에 든다. 현역 땐 정말 팀 사기를 높이기 위해 못 잡을 공에도 일부러 다이빙캐치를 시도하고 그랬었다."

◆나라 송·아홉 구·넓을 홍, "야구하라는 이름"

송 단장은 이름부터 야구를 떠올리게 한다. 이름 앞 두 글자 '송구' 때문이다. 3루수로 보낸 현역 시절에는 송구와 관련된 별명도 꽤 있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해석한 이름의 뜻이 재밌다.

"내 이름을 한자로 보면 나라 송(宋)에 아홉 구(九), 넓을 홍(洪)이다. 나라 안 넓은 운동장에서 아홉 명이 모여서 하는 것, 바로 야구다. 나 스스로 해석한 것인데, 억지로 끼워맞춘 부분도 있지만 야구를 할 운명이었던 것 같다."

송 단장이 야구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생 시절이다. 어린 나이에 야구를 너무 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어린 그에게 야구를 시켰다. 어린 나이부터 독기를 갖고 야구를 하게 된 이유였다.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집안이 어려웠는데도 부모님이 야구를 시켜주셨다. 보통 초등학교 때는 즐기면서 하지 않나. 그런데 나는 그 때부터 죽기살기로 운동을 했다. 야구로 꼭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절실하게 했기 때문에, 그래도 오랫동안 야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홈페이지 청원 운동 원조 "LG 사랑 세계 1위"

최근 프로야구에는 각 구단의 홈 페이지에 팬들의 청원 운동이 펼쳐지는 경우가 많다. 이유가 다양한데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애정을 실천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 후반 송 단장도 팬들에게는 큰 사랑을 받는 스타였다.

"해태, 쌍방울을 거쳐 2000년 LG로 돌아왔는데 팬들의 힘이 컸다. 팬들이 쌍둥이마당(구단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복귀 청원을 해줬고, 당시 이광은 감독님도 프랜차이즈니까 불러주라고 불을 붙여주셨다. 그 덕분에 선수 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LG 복귀 후 성적은 초라했다. 2000년 단 11경기에 나서 21타수 4안타, 타율 1할9푼을 기록한 것이 전부였다. 송 단장의 현역 시절 마지막 1군 기록이다. 그러나 팬들은 과거 그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잊지 않고 있었고, 이는 곧 송 단장이 LG 유니폼을 입고 2002년 현역 은퇴를 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팀에 대한 애정도 테스트가 있다면 세계에서 1등을 할 자신이 있다. 나는 LG에 있으면서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이제 그 혜택이 후배 선수들에게 돌아갔으면 좋겠다. 지금도 지난해 영상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팬들이 저렇게 좋아하는데, 왜 10년 동안 못해줬을까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선수들이 많아지면 자연히 성적도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수, 코치, 프런트를 모두 경험한 뒤 프런트의 수장이 된 송구홍 단장이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LG와 함께 하며 구단에 대한 애정을 쌓아온 것이 송구홍 단장 가장 큰 무기. 그의 야구인생 남은 목표는 1990년대의 영광을 재현해 LG를 명문구단으로 만드는 것 뿐이다.

조이뉴스24 정명의기자 doctorj@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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