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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구탱이형·영원한 광식이…故김주혁 별이 되다


데뷔 20년…농익은 배우와의 안타까운 이별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故김주혁은 특유의 무심한 표정과 단답으로 기자들 사이에선 '쉽지 않은 인터뷰이'로 통했다. 하지만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지 못하고, 가끔은 기대 못한 진솔한 대답들로 듣는 이의 마음을 한껏 끌어당기는 사람이기도 했다. 연기 인생 20년, 까마득한 후배들을 보며 "꼰대가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는 사람, "단편 작업에 신인이 되는 기분이라 좋다"던 천상 연기자, 김주혁이 하늘로 졌다.

30일 오후 고인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도로에서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겪었다. 김주혁은 사고 직후 출동한 소방대원에 의해 구조돼 건국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직접적인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1972년생, 올해 45세인 그는 2017년 박스오피스 2위에 기록된 영화 '공조'로 연기 인생의 2막을 열었다고 평가받았다. 불과 사흘 전, 지난 27일 제1회 서울어워즈에서 이 영화로 그는 첫 영화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공조'에서 남한으로 숨어든 조직의 리더 차기성 역을 맡은 그는 냉혈한 악역 연기를 과감하게 소화해내며 관객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거침 없는 액션부터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까지, '공조'의 차기성은 '김주혁은 여전히 보여줄 것이 많다'는 사실을 입증한 캐릭터였다.

1998년 SBS 8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고인은 연기자로 활약한 아버지 故김무생의 아들로 주목 받았으나 이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력으로 인정 받았다. 지난 2013년 말부터는 연기 뿐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시청자들의 남다른 사랑을 얻었다.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이하 1박2일)에 출연한 2년여의 시간 동안은 물론 하차 후에도 고인은 프로그램의 팬들로부터 '구탱이형'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변함 없는 호응을 얻어왔다.

본업인 연기 활동을 돌아보면서는 2000년대 초반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보여준 특별한 활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故장진영과 로맨스 호흡을 펼쳤던 영화 '싱글즈'는 물론, 엄정화와 연기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하 홍반장)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영화 팬들에게 회자되는 작품들이다. 특히 '홍반장'에서의 따뜻한 동네 반장 홍두식 역은 김주혁의 팬들로부터 오래도록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영화다.

전도연과 함께 한 SBS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수작 로맨틱 코미디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손예진과 첫 연기 호흡을 펼친 '아내가 결혼했다', 비교적 최근작인 옴니버스 '좋아해줘'까지 쟁쟁한 배우들과 매끄러운 호흡들을 다졌다. 어딘지 현실적이고 '지질'하면서도 다정다감한 인물을 특히 잘 그려낸 배우가 김주혁이었다.

최근 3년여 간 영화 활동은 더욱 촘촘했다. 손예진과 재회한 영화 '비밀은 없다', 홍상수 감독이 연출하고 이유영과 인연을 맺게 된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흥행작 '공조', 또 한 편의 올해 개봉작 '석조저택 살인사건'까지 바쁜 연기 활동을 펼쳐왔다. 로맨스에 특화된듯했던 그의 연기 스펙트럼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확장된 시점도 최근이라 할 법하다. 아직 관객을 만나지 못한, 작업 중이던 작품 역시 세 편이나 있다. '독전'과 '흥부', 특별 출연으로 이름을 올린 '창궐'까지, 제2의 전성기라는 표현이 꼭 알맞는 부지런한 영화 작업이 그와 함께였다.

지난 1월 영화 '공조'로 조이뉴스24와 만났던 김주혁은 최근 다작 행보를 이어온 것에 대해 "그 전에 주저를 많이 했던 것에 후회가 많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장르에 구애받지 말고 할 걸' 싶다. 역이 마음에 들면 앞뒤 안 가리고 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투자가 어떻게 될까' 보다는 '하는 거지, 뭐' 하다 보면 잘 되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연기 활동을 거쳐 뒤늦게 깨달은 이야기를 전하며 그는 움츠리지 않고 더욱 부지런히 연기를 해 나갈 것이라 다짐했었다.

단편 작업을 돌이키면서는 "내가 더 신인이 되는 기분이라 좋고, 다시 한 계단씩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열정이 차고 넘치는데, 그게 계속 가야 할 것 같다"며 "예전에도 열정이 있었지만 나이 들어 정리되는 열정이 있는 것 같다. 그 때는 막연히 '부딪혀보자'였자면, 이제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기준이 서는 것 같다"고도 말했었다.

데뷔 20년, 신인 배우들을 보며 그는 '꼰대가 되지 말자'는 생각을 한다고도 고백했다. "신인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보다, 그 아이들에게 배울 것이 많다"며 "순수함이 있어서다. 표현이나 분석이 떨어질 수 있어도 가끔 놀라게 하는 면이, 순수함 속에 툭 치는 면이 있어 그것을 늘 배운다"고 알렸다. 이어 "철 들지 않고, 순수함을 유지하며 내 감정 그대로를 표현하려 한다"고 연기 철학 또한 밝혔다.

신인들의 모습을 통해 배우고, 작은 작업을 통해 초심을 되찾는다고 말했던 김주혁이 허망히 관객의 곁을 떠났다. 안주하는 대신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베테랑 배우와의 가슴 저린 이별이다. 그렇게 그는 누군가에게 영원한 '홍반장'이거나 영원한 '광식이', 영원한 '구탱이형', 그리고 영원한 '배우'로 남았다.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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