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허준이 교수,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


2022년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美 프린스턴 대학 교수가 지난13일 서울 고등과학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최상국 기자]

[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허준이 美 프린스턴 대학 교수의 필즈상(Fields Medal) 수상 소식이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수학계는 수학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한국계 수학자가 최초로 수상하자 "한국 수학의 위상을 드높인 쾌거"라며 축제 분위기다. 허준이 교수에 대한 언론 인터뷰와 분석 기사도 쏟아져 불과 일주일 사이에 그의 이름을 못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한편으로는 한국 수학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해묵은 비판들도 다시 회자된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수학자"를 자랑스러워 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한국의 교육 환경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업적을 이룬 것"이라는 비아냥이 섞여 나온다.

한국계 수학자의 필즈상 수상 소식이 한국 수학교육 문제와 바로 연결되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시각도 있다. '수학'에 관한 뉴스는 모두 '대입 수학'에 관한 것 뿐이라는 수학계의 볼멘소리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이 중고교 시절의 수학 공부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고, '대입 수학'이 수학 공부의 전부처럼 느껴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언포자', '외포자' 라는 말은 없어도 '수포자'는 국립국어원 우리말 사전에 당당히 등재돼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 13일 서울 홍릉에 위치한 고등과학원에서 열린 허준이 교수의 귀국 첫 기자회견에서도 기자들의 질문은 대부분 수학교육에 집중됐다.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공부가 벽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극복했나요? 대한민국 수학교육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요?

극히 예외적인 성취를 이룩한 세계적인 수학자에게 보편적인 수학교육에 대해 묻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마디 힌트라도 얻고자 하는 심정은 어쩔 수 없다. 허 교수는 계속된 질문에 본인도 "초보아빠"이며 "수학교육에 관해서는 비전문가"여서 적절한 답을 드리기 곤란하다고 말을 아꼈다. 대신 '개인경험'을 예로 들며 간접적으로 답하느라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핵심을 찌르는 한 마디는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소중한 학창시절을 공부하는 데 사용하는 게 아니라 잘 평가받기 위해서 사용하는 데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사실 저는 수학교육 그 자체나 교육 과정의 세세한 부분에 있다기보다는 항상 경쟁에서 이겨야 되고 더 완벽하게 잘해야 되는 사회문화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면서 학생들에게는 조급해 하지 말고, 스스로를 독촉하지 말고, 안 풀릴 때는 포기도 하면서 여유를 가지라고 충고했다.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고등과학원 석학교수 겸 프리스턴대 교슈가 지난 13일 서울 고등과학원에서 수상 기념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면 보편적 수학교육의 문제에서 벗어나 수학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접어들면 허준이 교수의 천재성과 학문적 깊이는 수시로 반짝이며 드러난다.

수학계는 허준이 교수가 "대수기하학을 조합론에 적용해 오래된 난제를 해결한 혁신의 선구자"라고 극찬하면서 다양한 해설도 제공하고 있지만 수학의 문외한인 우리가 그 내용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허준이 교수의 성과와 그가 전하는 말에 감명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수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그의 말에서 묻어 나오는 깊은 울림에 새로운 영감과 자극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어려운 수학의 세계를 우리가 알아듣기 쉬운 일상적인 언어로 전달해 주는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표적으로 그가 지난해 호암과학상 시상식에서 말한, 그리고 이번 필즈상 수상소감으로도 인용된 아래의 문장은 앞으로 두고두고 허 교수의 대표어록으로 인용될 것으로 보인다.

"제게 수학은 개인적으로는 저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고 좀 더 일반적으로는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고 얼마나 정확하게 서로 소통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과정입니다."

허 교수는 이 문장이 "시상식 당일 아침에 그냥 급한 마음에 큰 뜻 없이 멋있어 보이는 단어들을 조합해서 만들었다"고 했지만 평소 몸에 체화돼 있던 말이 자연스럽게 응축돼 나온 것이 틀림없다.

지난 13일 기자회견에 이어진 특별강연에서 그는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좀더 상세하게 설명했다. '경계와 관계'를 주제로 한 이 강연에서 그는 수학자들이 탐구하는 대상과 그것들의 관계, 규칙을 알아내고 명제를 증명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복잡한 수학 공식 없이 장난감이나 체스판을 비유로 사용하면서 알기 쉽게 들려주어 감탄을 자아냈다.

"이런 것(명제)들이 왜 우리에게 흥미로운가 하면은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를 강력하게 시사하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어떤 종류의 직관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어떤 종류의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어려운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서로 대화하고 같이 풀어가는) 이러한 경험을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스스로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 수학자들이 하고 싶어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뭐냐 하면 이 명제 공간 내에서 수많은 명제들이 서로의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관계의 지도를 최대한 자세하게 그려냄으로써 우리 인간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를 이해하는데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허 교수는 수학 교육 같은 보편적인 사회문제에 대한 대답은 매우 어려워했지만 자신의 연구 성과에 대한 질문에는 자신있게 답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서로 다른 분야 사이를 넘나들며 남다른 학문적 성취를 이룩할 수 있었던 자신 만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스스로 '언어 능력'을 꼽기도 했다.

"중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와 매일 시와 소설을 교환하면서 언어를 다루는 훈련이 비교적 잘 돼 있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러한 배경을 가지고 늦게나마 수학을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수학자들과 조금 다른 면이 있는데요. 저는 다른 수학자에 비해 기하학적 직관이 뛰어나서 시각화를 잘한다거나 계산을 잘한다거나 하는데는 굉장히 약한 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전개하는데 가장 강력한 도구 중에 하나가 언어라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어렸을 때부터 언어를 잘 다루는 훈련을 한 것이 큰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그에게 혹시 영향을 받은 철학자가 있는지 물어 보았다. 비트겐슈타인이나 훗설 같은 서양철학자의 이름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잠깐 했지만 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철학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상관없다. 그는 이미 수학이라는 창을 통해 인간의 길을 깨우쳐 가고 있는 대학자니까.

그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며 국적을 문제삼는 이들도 있지만, 한국에서 자라 한국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는 세계적인 수학자의 등장은 우리에게 큰 축복임에 분명하다. 그가 연구하는 순수수학이 당장 실용적인 분야에 적용되지는 않을지라도 언젠가는 인류 문명의 도구로 구현될 것이 분명한 것처럼, 그가 앞으로도 수십년에 걸쳐 이루어낼 학문적 성취와 그 과정에서 도달하게 될 인류 지식의 새로운 지평,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대중들에게 들려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최상국 기자(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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