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별이후 30년] 그때 그 사람들…지금은 어디에


빛바랜 사진 속 우주역사로 들어가던 날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1992년 8월 11일. 우리별 1호가 분리될 시간이 다가오면서 연구팀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만일 우리별이 분리에 실패한다면…. 3년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젊음을 쏟았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우리의 장래도 사라질 것이다. 다시는 위성을 만들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쎄트렉아이 러시(박성동-이강환 공저) 중에서)

우리별 1호는 크기 35.2cm×32.6cm×67.0cm에 무게 48.6kg의 소형위성이었다.

“우리별 분리 정상!”

조용하던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 우주기지에는 환성과 박수가 폭죽처럼 쏟아졌다. 대전의 지상국에서도 환호성이 터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이 우주로 올라간 순간이었다. 우리별 1호는 발사 23분 36초 후에 로켓에서 분리돼 단독 비행을 시작했다.

우리별 1호 개발과 관련해 1990년 영국 서리대학과 위성 개발에 협의했다. [사진=카이스트]

1992년 발사에 앞서 연구원들이 우리별 1호 진동 시험을 하고 있다. [사진=카이스트]

"우리가 우리별 개발의 주인공." 우리별 1호 관련 개발팀원들. [사진=카이스트]

1992년 8월 11일 우리별 1호 발사 현장. [사진=카이스트]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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