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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전세사기] ② 절벽에 선 무주택자들…국회는 '개점휴업'


'최후의 보루' HUG조차 외면…법적구멍 노리는 사기꾼

[아이뉴스24 이영웅 기자] #. 대학생 A씨(25)는 2019년6월7일(금요일) 새롭게 구한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A씨는 짐 정리를 마치는 대로 동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하고자 했지만, 시간이 늦어져 하지 못했다. 주말을 넘겨 월요일인 10일 전입신고 및 확정일자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 날벼락 소식을 접한다. 전입신고일 당일에 새로운 집주인이 3억원 근저당권을 설정했는데 빚을 갚지 못하면서 집이 압류됐다는 것.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A씨는 1억원의 보증금 중 한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우울증에 걸린 A씨는 알바를 하며 대출을 상환하고 있다.

임차인의 대항력이 전입신고한 날의 '다음날' 발생한다는 '법적구멍'을 노린 전세사기가 극에 달하면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국회는 임차인의 대항력을 강화할 경우 자칫 은행 등 금융권의 대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면서 관련 법안 처리가 난항을 겪고 있다.

임차인의 대항력은 전입신고 다음날 0시에 진행된다는 점을 노려, 임대인이 임차인의 전입신고 당일에 소유권이전거래를 진행하는 전세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임차인의 대항력은 전입신고 다음날 0시에 진행된다는 점을 노려, 임대인이 임차인의 전입신고 당일에 소유권이전거래를 진행하는 전세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설상가상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역시 대항력에 문제가 있는 임대보증금 반환 이행청구에 대해 무더기로 심사보류 판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신혼부부와 사회초년생 등 주거취약계층들은 매년 전세보증금 사기의 대상이 돼 최대 수억원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있다.

◆ 날로 늘어나는 전세사기…HUG가 대신 갚은 보증금액만 4415억

6일 HUG와 법무부 등에 따르면 HUG의 전세금 반환보증보험 대위변제 금액이 2016년 26억원, 2017년 34억원에서 2018년 583억원으로 급증 후 2019년 2천836억원, 지난해 4천415억원까지 늘어났다. 불과 4년 사이에 168배 증가한 것이다.

이 가운데 임차인의 전입신고 당일 악의의 임대인이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전세 사기가 증가하고 있다. 임대차보호법에는 임차인은 전입신고와 점유를 갖췄을 때 '익일'부터 제3자에 대한 대항력이 발생하고, 저당권의 효력 발생 시점은 저당권 설정 등기가 이뤄지는 '즉시'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전입신고를 완료한 당일 저당권 설정등기가 진행될 경우 세입자는 배당순위에서 후순위로 밀린다. 경매부동산 매각 대금은 집행비용을 먼저 공제하고, 나머지는 기준일자에 따라 우선순위가 높은 권리자부터 배당 받는다. 세입자는 융자 없는 주택을 확인하고 전입신고를 하더라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지난해 초에는 서울 서초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주택을 판 집주인도 피해를 입었다. 해당 주택에서 전세보증금 10억5천만원에 거주 조건으로 매매전세계약을 했는데, 매수자가 계약 당일 대부업체로부터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같은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행정안전부의 2019년 민생규제 혁신과제 공모에서 민생규제혁신심사단이 심사한 결과 전입신고 당일 대항력이 발생하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 개정을 통한 임차인 보호 강화'가 장려상을 받기도 했다.

전세 보증금 사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국회는 마땅한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세 보증금 사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국회는 마땅한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전입신고 허점 노린 사기꾼들…국회는 대체 뭐하나

국회 역시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9년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해 법제사법위원회로 회부됐지만, 수개월째 계류된 뒤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지난해 11월 민주당 민홍철 의원 역시 같은 내용의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 의원은 "임차인이 임차주택의 인도를 받아 전입신고를 하더라도 악의의 임대인이 같은날 근저당권을 설정하면 임차인은 근저당권자보다 후순위가 돼 보증금을 보호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보증금은 서민의 중요한 재산인 만큼 대항력 발생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1월 김진애 전 열린민주당 의원 역시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김 전 의원은 한단계 더 나아가 보증금 중 일정금액을 다른 권리관계보다 최우선적으로 보호하는 최우선변제제도를 현실화 하는 방안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해당 법안에 대해 이렇다 할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익명의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근저당권을 가장 많이 설정하는 곳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으로 이들 입장에서 전입신고 즉시 세입자의 대항력을 갖추도록 규정할 경우 대출 리스크가 커져 법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상가상으로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던 HUG 역시 대항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임대보증금 반환 이행청구에 대해 무더기 심사보류 판정을 내리면서 무주택 서민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절벽으로 내몰렸다. 어느 누구도 이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있다.

/이영웅 기자(her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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